수원시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복원에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하면서 화재 대비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화성 내 건축물은 26채로, 창성사 진각국사 조탑비를 제외하면 모두 목조(木造)로 분류된다. 그만큼 화재에 취약하지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없다.
또 화재 발생 시 인근 소방서로 연결되는 ‘속보설비’가 설치된 건 팔달문, 화서문, 방화수류정, 서북공심돈 등 ‘보물’ 지정 문화재 4채뿐이고 나머지 문화재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경기일보 취재 결과, 장안문에 비치된 소화기 6대는 새까만 먼지가 쌓이다 못해 끈적하게 엉겨 있었고 이 가운데 4대는 손잡이 부근에 녹이 슬어 안전핀이 움직이지 않았다. 1대는 아예 호스가 없어 불이 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창룡문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소화기 4대 중 1대는 제조시기가 2000년으로 무려 21년 전에 만들어진 소화기를 형식적으로 설치해놨다. 소화기의 내구 연한은 통상 10년이다. 나머지도 손잡이와 안전핀이 녹슬어 있었다.
그러나 장안문과 창룡문에 놓인 소화기의 마지막 점검일은 불과 2주 전인 이달 13일로 기록돼 ‘보여주기식’ 관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는 팔달문, 화서문과 동급인 장안문, 창룡문에 속보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원형이 아닌 복원물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상인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천억원을 들여 팔달문 성곽을 복원하고 있는 모습과 상반된다. 장안문, 창룡문은 6ㆍ25전쟁 때 파괴된 뒤 1970년대 들어 복원됐다.
정작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화홍문, 해돋이 명소로 유명세를 타 시민의 발길이 잦은 서장대엔 각각 소화기 2대만 설치돼 있다. 더구나 수원화성 방재시설 담당 직원은 돌로 만들어진 창성사 진각국사 조탑비를 목조로 분류했다가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석조(石造)로 정정하는 등 관리 실태마저 허술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화재를 겪은 숭례문은 속보설비 뿐만 아니라 스프링클러까지 완비돼 있다”며 “화재는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인데,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만 따른다는 건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직원들이 24시간 교대 근무하며 CCTV로 감시하고 있다”며 “소화기의 상태는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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