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자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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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의 주인공 존 메이는 런던의 구청 공무원이다. 20년 넘게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을 해왔다. 그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지 수소문해 부고를 알린다. 연락받은 지인 중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고인과 사이가 틀어졌거나, 오랜 단절로 마지막까지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다. 존 메이는 고인의 종교나 문화권에 맞는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애쓴다. 사진이나 유품을 통해 고인의 삶을 추측해 추도문을 작성한다. 화장한 유골은 나무 아래 뿌리고, 사진은 앨범에 넣어 간직한다. 자신만이라도 그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어느 나라에나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로 고독사ㆍ무연고사가 증가하고 있다. 고독사는 사망 시점에서 홀로 죽는 것이고, 무연고사는 장례 시점에서 시신을 인도받을 이가 없는 것으로 개념이 좀 다르다. 고독사 뒤 가족에게 연락이 닿아 시신이 인계되는 경우도 있고, 시신 인도를 거부해 무연고사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장사법상 배우자, 자녀, 부모 순으로 장례 결정권이 있는데 장례 비용, 가족관계 단절 등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무연고사로 처리된다.

죽음 뒤 쓸쓸하게 홀로 남겨진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7년 2천8명, 2018년 2천447명, 2019년 2천536명에서 지난해 2천880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사망자 중 65세 이상 노인이 1천298명으로, 전체의 45.1%를 차지했다.

아무도 곁에 없이 맞는 죽음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정부가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 관리를 위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이달부터 시행한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경기도 공영장례 지원 조례’에 근거해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사망자,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ㆍ기피한 사망자를 대상으로 장례서비스를 지원한다. ‘스틸 라이프’의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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