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이 새로 왔다. 그는 전임 관리소장과 차별화하고자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시도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단지 내 도로의 불법주차를 단속한다며 ‘불법주차 강력 단속’이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 놓았는데 ‘강력 단속’이라는 글자는 빨간 글씨로 크게 써서 눈에 잘 띄었다. ‘단속’이면 그냥 단속이지 강력한 단속은 또 무엇일까? 주민들은 주목했다. 결국 강력 단속이란 자동차 앞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단지 내 주차위반은 여전했고 강력단속 현수막만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었다.
그는 또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강력 단속’하겠다고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여 놓는 등 그렇게 ‘강력’ 한 조치들을 좋아했다. ‘관리소장’ 직책을 완장을 찬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어느 날 관리소장이 경로당을 방문했는데 그의 승용차를 인도에다 불법 주차한 사실이 드러났다. 주민이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아파트 홈페이지에 올리자 주민들의 여론이 싸늘하게 변해 갔다. 그렇게 ‘강력 단속’ 현수막까지 걸고 야단이더니 정작 자신이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결국 관리소장은 주민들과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쫓겨나다시피 물러갔다.
요즘 LH 부동산 투기 쇼크가 터지자 부동산 투기 ‘강력 단속’이니 공직자가 투기로 적발되면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겠다는 등 그 용어들이 살벌하게 쏟아지고 있다. 재산 몰수, 토착 왜구, 소급입법이라는 용어도 등장하더니 마침내 9급 말단 공무원까지도 재산 등록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앞서 가다 보면 실제로 뒤는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람들이 흥분해 다툼이 벌어졌을 때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잘한다. 말 그대로 죽이는 행동을 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실제로 무서운 사람은 그런 험악한 말을 하지 않고 얼굴에 표정도 짓지 않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정책을 다뤘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차법 발효 직전, 자신의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14% 인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에 말한 ‘강력 단속’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무서운 용어들이 힘을 잃고 말았다. 법이 발효되면 5% 이상 인상할 수 없으니 발효 전 이렇게 기습 인상한 것이다. 대통령 최측근 정책 책임자의 양심이 어떻게 이랬을까. 더욱이 그는 ‘재벌의 저승사자’라는 별명과 함께 경제 정의의 전도사처럼 행세했다.
김상조 전 실장에 앞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투기 논란으로 사임했는데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나타났으니 누가 이 나라가 걸핏하면 내세우는 공정과 정의를 믿겠는가?
이런 가운데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처럼 임대차법 발효 20여 일을 앞두고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 인상한 사실이 밝혀져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충격적인 것은 임대차법을 발의한 장본인이 바로 박주민 의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정말 이쯤 되면 ‘강력 단속’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말들이 국민에게 먹힐까?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이 ‘강력 단속’ 현수막까지 걸어 놓고 설치다 오히려 자신이 불법 주차로 자리에서 물러난 꼴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공정’이니 ‘정의’니 하는 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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