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던 강도살인 사건의 범인이 테이프에 남긴 유전자(DNA)로 덜미를 잡혔다.
안산단원경찰서는 강도살인 혐의로 A씨(41)를 입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01년 9월 오전 3시께 공범 1명과 함께 안산시 단원구 오잔동의 한 연립주택에 침입, B씨(50대ㆍ여)의 남편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은 B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뒤 현금 10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검정 테이프를 비롯해 A씨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여러 개 확보해 DNA 분석을 의뢰했으나, 당시의 과학기술은 DNA를 검출하지 못했다. 또 A씨 일당이 일면식도 없는 B씨 부부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데다 가스배관을 타고 창문으로 침입, CCTV에 모습이 잡히지 않아 수사는 답보에 빠졌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난해 6월, 경기남부경찰청은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재수사를 마무리 짓는 중이었다.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이뤄진 재수사는 그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춘재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춘재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 14건 중 5건의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 덜미를 잡혔다.
수십년 지난 DNA도 식별할 수 있는 최신 분석 기법은 안산단원서 형사들의 기억을 20년 전 강도살인 사건으로 되돌렸다. 이들은 경찰서 증거보관실에 있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다시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로부터 1개월이 흐른 지난해 8월, 증거물 중 B씨를 결박하는 데 사용됐던 검정 테이프에서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는 국과수 회신이 도착했다. 경찰은 해당 DNA를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다른 범행으로 현재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A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A씨를 만나 DNA 분석 결과를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20년 전 강도살인 사건에 대해 물었으나,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후 DNA 분석 결과를 듣고 나서야 A씨는 “그렇다면 분석 결과가 맞겠죠”라며 사실상 혐의를 인정했고, 이후부터 경찰의 접견 조사를 거부했다. 또 범행 당시 공범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검정 테이프를 비롯한 증거물에서 A씨 외에 다른 DNA는 현재까지 검출되지 않아, 20년 전 A씨의 주변 인물 등을 대상으로 공범을 색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관내에서 발생한 장기미제 사건을 형사들이 잊지 않아 늦게나마 범인을 잡게 됐다”며 “남은 공범도 끝까지 추적,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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