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만해 한용운의 불교관과 독립운동

한국 근현대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만해 한용운(1879~1944)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민족주의 계열의 인물 가운데 변절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인물이 한용운이라고 한다. 앞 문장의 ‘거의 유일한’에서 ‘거의’가 붙은 이유는 혹시 새로운 인물이 발굴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27세에 강원도 백담사에서 출가했고, 39세(1917)에 백담사 오세암에서 좌선하다가 견성체험을 했다. 1919년(41세) 3ㆍ1운동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53세(1931)에 잡지 ‘불교’를 인수해서 사장이 됐다. 이 ‘불교’에 한용운의 좋은 글이 많이 실려 있다.

한용운의 불교관은 ‘개벽’ 45호(1924)에 실린 ‘내가 믿는 불교’에 잘 소개돼 있다. 첫째, 불교는 스스로 믿는 가르침이다. 이는 믿음의 대상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불교에서는 평등을 말한다. 이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불교에서는 마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넷째,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널리 사랑하고 서로 구제할 것을 구체적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한용운의 불교관 가운데 넷째 내용, 곧 불교는 모든 중생을 널리 사랑하고 서로 구제하는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그의 독립운동과 다른 사회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한용운은 ‘동아일보’ 1925년 1월1일 칼럼에서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두 가지 노선, 곧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의 충돌을 화해시키고자 한다. 한용운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당시 사상계를 대표하는 두 개의 흐름인데, 이 둘이 서로 반발하고 대립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혼돈이 생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대안으로 한용운은 이론을 버리고 실제적 관점(實地)에서 이 두 노선을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말하는 경제혁명이나 민족주의 운동에서 말하는 민족해방이 다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에 근거해서 서로 반발을 한다면, 사상(思想)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장본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비유를 들면,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중인데 비를 만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에는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면서 서로 가려는 방향은 있겠지만, 일단 폭풍우를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한용운은 이러한 문제를 사상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본 실행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한용운의 주장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여전히 정치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용운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상, 곧 정치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것이고, 현실을 제대로 본 실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용운의 주장처럼, 실제적 관점에서 한국의 미래를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이병욱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