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태어나 재독 한인으로 살아가던 사촌의 결혼과 출산 소식을 들었다. 4년 후 남편과 헤어졌고 아이는 사촌이 양육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둘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 파트너’였다. 한국 친척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이고 어쩌냐.” 미혼모로 감당할 사회적 편견과 양육 비용 등등 걱정이 잇따랐다. 독일에서 들려온 반응은 쿨했다. “괜찮다. 여긴 한국 같지 않다.” 정부가 지원한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안정적으로 양육비를 받으며 공부도 했다. 삶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규화한 ‘생활 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적 지원이 그 뒷받침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생활 동반자법과 같이 전통적인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다. 정부는 1ㆍ2인 가구, 미혼모ㆍ미혼부ㆍ다문화 가정 및 이혼ㆍ동거 부부 증가와 성평등 추세 등에 맞춰 확 바뀐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확정했다. 가족 형태 다변화, 개인 권리에 대한 관심 증대 등 시대 흐름을 고려해 가족정책을 개편할 예정이다. 삶의 다양한 선택으로 법이 굴레였던 가족사의 다양한 면면을 이제라도 껴안을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사실혼이나 노년 동거 부부의 법적 권리 보장이 필요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악용에 대비한 철저한 보완책과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개인이 원치 않아도 이득을 위해 가족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문화다. 삶의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진 가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시선이 우선돼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선진국이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집단이 지성 사회다. 가족의 재탄생을 맞이할 우리가 지닐 첫 번째 자세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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