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부동산 계급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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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세요?”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묻곤한다. 물론 궁금해서 일 수 있다. 특별할 게 없는 질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신분이 무엇이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지역을 말하면 대충 집값이 가늠돼 어쩌면 불쾌할 수 있는 질문이다. 주택시장 양극화로 자산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어디에 살고, 어떻게(자가·전세) 사는지’가 신분이자 계급인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대란이다. 시장에는 부동산 상황을 풍자한 신조어가 판을 친다.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지방까지 확산된 집값 불안 때문이다. 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데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불안감이 크게 분출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12년 넘게 걸린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수도권에 집 한 채만 있어도 ‘부자’ 소리를 듣는 시대다.

사회적 계급이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로 구분되는 모습이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수록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프레임을 넘어 계급이 더 세분화하고 있다. 예전엔 주택 소유 여부만을 놓고 계급을 나눴다면 최근엔 어떤 지역에 어떤 브랜드 아파트를 가졌느냐를 따진다. 인터넷엔 이를 도식화한 ‘부동산 계급도’가 떠다닌다. 사는 곳(자가 기준)에 따라 황족부터 왕족, 중앙귀족, 지방호족, 중인, 평민, 노비 등으로 나뉜다.

황족은 단연 서울 서초·강남구다. 황족 내에서도 계급이 나뉘는데, 정점(계급도상 그랜드마스터)엔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반포 아크로리버파크가 있다. 부동산 계급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공고해졌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각종 규제책이 오히려 강남 아파트의 희소성을 높이고, 비(非)강남 거주자의 패닉바잉(공포 매수)을 부추긴 결과다. 25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놨으나 시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한국판 카스트제도’, ‘설국열차 부동산 버전’ 등의 새로운 부동산 계급표를 양산했다. 부동산 계급도를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사회 갈등, 혐오와 차별 등의 문제도 걱정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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