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방문이 열린다. 손전등 불빛이 방안으로 쏟아진다.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다. 손전등 뒤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외친다. “국군 만세!” 손전등 뒤에 있는 이들이 반대편 쪽 군인들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타계한 이청준 작가가 1971년 발표한 ‘소문(所聞)의 벽(壁)’의 한 대목이다.
▶소문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전해지는 말이다.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지만, 무섭고 흉악하다. 주인공은 어두운 방안에 손전등을 들이대며 어느 편이냐는 추궁에 공포감을 느낀다.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소설은 전화(戰禍)로 고통스러운 젊은이들의 잠재의식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진실과 억압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같은 이름의 소설을 남긴 서양 작가도 있다.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939년이었다.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숱한 아낙네들이 유린당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주인공은 두껍게 막힌 벽 앞에서 좌절한다. 오래된 관습과 통념이 만든 벽은 전쟁보다 더 무섭고 참혹하다.
▶연암 박지원은 “만주족의 나라라고 청나라를 멸시하는 건 잘못”이라고 설파했다.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서였다. 그는 서장관(외교사절)이었던 8촌형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목격한 세상을 토대로 썼다. 연암은 북벌론(北伐論)이 벽이라고 꼬집었다. 명나라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헛된 성리학을 숭상했던 기득권층에게는 반역이었다. 역사는 그렇게 반전(反轉)을 거듭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사회를 두텁게 가르는 벽은 늘 존재한다.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편견 등은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요즘의 벽은 코로나19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또 다른 벽이기 때문이다.
▶그 벽 가운데 으뜸은 소문이다. 소문은 이데올로기의 사촌 격이다. 그 벽은 사람들을 언제나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둔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에드워드 할렛 카(Edward Hallett Carr)의 해석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꺼운 억압의 벽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양심을 지켜왔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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