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잘못 그은 선 하나…사라진 토지보상금 1억

연무동 62-4번지의 사건 일지. 장희준기자 (그림=유동수 화백)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62-4번지에 대한 사건 일지. 장희준기자 (그림=유동수 화백)

40년 전 등기소의 행정 착오로 한 노인이 억울하게 땅을 잃었다.

문제의 토지는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62-4번지(552㎡). 수십년이 지나 도로가 들어서면서 뒤늦게 오류가 밝혀졌지만, 이미 토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른 사람의 땅에 합쳐진 뒤였다. 토지보상금마저 애먼 사람에게 잘못 지급됐고, 되찾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황혼기를 다 바친 박명자 할머니(74ㆍ가명)의 원통한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8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등기소에서 기록을 옮기면서 62-4번지를 ‘63-4번지’라고 잘못 적는 오류를 저지른 것. 해당 토지는 박 할머니와 이웃 5명이 공동 소유한 땅이었다. 당시 등기소 직원의 실수로 이들 6명은 세상에 없는 63-4번지의 소유주가 됐고, 62-4번지는 주인 없는 땅이 됐다.

시간이 흘러 지난 2006년 6월 수원시는 도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문제의 필지를 포함, 그 일대에 도로를 깔게 된다. 보상공고를 냈고 이듬해 토지주를 찾아 약 1억1천만원의 보상금을 내줬다. 도시계획선이 그어지며 62-4번지는 6개 필지로 분할됐고, 이 가운데 경제성이 없는 도로 옆 자투리땅 3개 필지는 국유재산법에 따라 각각 옆 토지로 병합됐다.

그러나 박 할머니 등 6명 중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등기 오류를 알아챈 이웃 K씨가 자기 땅인 척 보상금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K씨는 62-4번지 옛 소유주의 상속자(손자)였고, 이를 이용해 서류상 주인이 사라진 62-4번지의 소유권을 취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할머니는 등기소, 구청 등을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후 국민권익위원회의 도움으로 40년 전 이기(移記) 오류를 밝혀냈고, 지난 2018년 5월에서야 등기가 정정됐다.

돌파구를 찾은 듯했으나 다시 ‘소극 행정’에 길이 막혔다. 하나의 땅에 62-4, 63-4번지라는 2개의 이름표가 달렸지만, 시는 중복등기를 말소하지 않았다. 결국 박 할머니는 지난 2019년 2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승소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6월 시에 소유권 이전등기의 말소 절차를 이행하라고 명령했다.

사태는 이미 꼬일대로 꼬인 뒤였다. 절차를 바로잡기 위해선 먼저 옆 토지에 병합시켰던 3개 필지를 재분할해야 하는데, 이미 도시계획이 진행된 탓에 재분할 행위가 도시계획법 등을 위배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잘못 지급된 보상금도 10년 넘게 지나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박 할머니는 “나도 모르는 사이 발생한 오류로 땅을 잃었다”며 “이사를 가면 잃어버린 땅을 영영 되찾지 못할까봐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는 법원의 선고를 이행할 방법을 찾고자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 질의를 넣었다. 다만 현재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 도로관리과 관계자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라며 “국토부에 재차 질의할 예정이며, 빠른 시일 내에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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