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머뭇거리지 말자”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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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중간고사를 며칠 앞뒀을 때였다. 고교 동창 꾐으로 녀석이 다니는 대학 강의실로 들어섰다. 달음박질치느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5분 정도 늦었다. 교수님의 눈초리가 꽤 따가웠다. 낯선 학생을 향해 곧장 질문이 던져졌다. “왜 뛰어왔는가”

▶어리석은 학생의 대답은 참으로 아둔했다. “선생님 강의를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그랬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아무튼 살아야 하겠다는 의욕이 생긴다”고 대답했다.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은 계속됐다. 살아야 하겠다는 의욕은 열공하게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참한 여성과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잘 키우고…. 뭐 이런 식이었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일대 반전이었다. “학생이 내 강의를 들으려고 뛰어온 목적은 결국 죽기 위해서가 아닌가?” 대답거리가 막혀 버렸다. 막막했다. 강의실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바야흐로 유신정권 말기였던 1978년 5월 하순이었다.

▶필자를 주눅이 들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장안의 젊은이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리스시대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하는 철학자다. 올해 100세를 맞으셨다. 99세를 가리키는 백수(白壽)보다 1년이 높은 연세다.

▶비록 직접 은사로 모시진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생의 스승으로 모셨다. 힘들 때마다 43년 전의 그 일화를 생각하며 이겨왔다.

▶국내 서양철학의 체계를 세운 김형석 교수가 엊그제 또 명언을 남겼다.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2차 세계대표자대회 기조강연에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남을 위해 사는 이타심 있는 삶을 설파했다.

▶그는 친한 동료 학자였던 안병욱·김태길 교수와의 우정을 이야기했다. 먼저 세상을 뜨긴 했지만, 모두 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다. “이 친구들의 학문 연구는 환갑이 넘어 비로써 시작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 같은 열정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독일 속담도 인용했다. 마지막 구절이 또 반전이었다.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그러니 절대 머뭇거리지 말자”. 이젠 반백이 된 그때의 젊은이를 그 대철학자는 기억하실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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