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사제

2019년 11월 유네스코 본부는 제4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올해 2021년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천주교 대전교구와 당진시는 지난 18일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 솔뫼에서 ‘김대건의 해’ 선포식을 갖고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업적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사제(司祭)’는 누구인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 사제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일반적 시선은 한편에선 ‘특별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 비신자들은 사제가 독신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대 혹은 환상을 가진다. 다른 한편에선 사제의 ‘특별한’ 삶이 평범한 ‘무관심’ 속에 묻혀 버리기도 한다.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비신자들은 ‘사제’를 여러 직업군 중 하나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천주교 사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돼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제는 오랜 시간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09년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셨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사제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필자의 유학 시절,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할 때 직업란에서 머뭇거렸던 적이 있다. 학생 신분으로 외국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필자는 천주교 신부였고, 직업란에 ‘천주교 사제’라고 적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는 여러 직업 중 하나일 뿐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원로 신부님을 찾아갔을 때, 신부님은 씁쓸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셨다. 그 웃음에는 세속적 사고와 잣대로 사제를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사제는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다. 하지만 사제가 거행하는 제사는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다. 사제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간 안으로 끌어온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속에서 보여주기 위해 사제는 존재한다. 사제가 행하는 일련의 사회적 활동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한 노숙자에게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하는 한 사제의 배려는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는 복음적 행위이다. 훼손돼 가는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사태의 위중함을 알리는 한 사제의 외침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알리는 예언자적 선포이다.

사제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개인적 이익을 포기하고 공적 선익을 구하고자 살아가는 사제들은 직업인일까?

정진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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