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5일. 살을 에는 추위 속 임시 주둔처를 찾아 헤매던 국제연합군 네덜란드 보병대 대원들이 마침내 ‘쉼터’를 구했다. 1923년 건립된 삼일학원의 교사(校舍)이자 수원에 현존하는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 ‘아담스기념관’이다. 부산에서 창문도, 문도, 지붕 일부도 없는 기차를 타고 험난한 여정 끝에 다다른 공간. H.C. Stal(스틸) 상병을 비롯한 네덜란드 참전병들은 2주간 이곳에 머물며 대한민국과 스스로의 몸을 지켰다.
6ㆍ25전쟁 당시 네덜란드는 1천360명의 해군 병력, 3천418명의 지상군 병력을 파병했다. 이 가운데 실종자는 1명, 부상자는 381명, 전사자는 115명에 이른다. 아담스기념관을 거처로 삼지 못했다면 네덜란드 병력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경기도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아담스기념관은 현재 삼일중학교(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내에 자리해 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과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회(현 네덜란드 재향군인회)는 삼일학원의 ‘은혜’에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보답하고 있다. 삼일학원의 후신인 수원 삼일상업고등학교와 삼일공업고등학교, 삼일중학교 학생들에게 상장과 장학금을 전달하는 식이다.
1983년 9월엔 “한국전쟁에 파병된 우리 대원들이 1950년 12월5일부터 12월22일까지 이 학교에서 휴식하고 위안을 얻었다”며 감사패를 전했다. 특히 스틸 상병은 작고하기 전 본인의 군복과 군화, 모자, 훈장 및 종군기장증 등을 삼일학원에 기증했다. “고마운 우정의 뜻을 전하며 영원히 간직해주길 바란다”는 유언도 함께 남겼다.
이 같은 사료(史料)들은 모두 삼일상고 내 역사관에 보관 중이다. 학교 측은 네덜란드의 오랜 ‘보은’을 소개하면서 삼일학원의 뜻깊은 역사를 알리는 데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학교가 품은 의미가 깊긴 마찬가지다. 3학년 김유정ㆍ이민규ㆍ정영주ㆍ박지원ㆍ진수빈 등 재학생은 지난해 역사탐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약 1년간 본교 역사관에 있는 자료들을 현대화(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참여했고, 이는 곧 ‘삼일학교 120년의 초석’이라는 책자를 발간하는 토대가 됐다.
삼일상고 제23회 졸업생이자 교내 역사관을 만든 주역 박상풍 삼일상고 교사(60)는 “역사관 내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네덜란드 측의 반세기 넘는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앞으로도 삼일학원의 이념이 후세에 길이 남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과 네덜란드가 수교 60주년을 맞는 올해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찾아왔다. 톰 코펜(Tom Coppen)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1등 서기관은 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에선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지만, 한국의 자유를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면서 “70여 년 전 일어난 사건임에도 서로의 우정을 유지하기 위한 양측의 헌신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가 서로의 좋은 친구이자 오랜 친구임을 기억하는 건 확실히 가치가 있다. 앞으로의 우정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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