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이 찬술한 ‘삼국유사’(1281)는 고대 한국인들의 시원과 역사적 자취를 가름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 중 하나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의도는 민족 주체성의 회복과 자긍심 고취 또는 불교사상의 포교 및 교화에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 삼국유사는 앞으로 한국적 격의불교 관점에서도 연구될 자료로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처음과 끝 부분에 있는 두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우선, 삼국유사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기이편 ‘고조선 왕검조선’이다. 그 이야기 일부만 소개한다. 아들이 땅에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 환인 하느님은 환웅 아들의 뜻을 헤아려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사람 사이를 이롭게 할 만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해줬다. 이후 아들은 이 세상에 내려와 이치에 따라 다스리고 교화했다. 한편 그 근처에 같은 동굴에 사는 호랑이와 곰이 있었는데, 환웅은 그들에게 신령스런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며 이것을 먹고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러줬다. 곰만 여자 사람이 됐고, 사람이 된 웅녀와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 사이에서 난 아들이 단군이다. 단군은 하늘이 땅과 소통하며 그 덕을 합한 중간적 존재자다. 이 이야기는 고대 한국인들의 시원을 다루는 이야기다.
다음, 삼국유사의 마지막 부분 효선편 이야기다. 이 중 하나만 소개하겠다. 이 이야기는 전생과 이생의 부모에 대한 대성의 깊은 효성과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 등의 불사를 이루는 이야기다. 불국사를 조성하고 석굴암을 조성하는 계기 가운데 곰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날 대성이 곰을 사냥 후 회심하고 곰을 위해 불국사를 조성하는 불사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석굴암을 조성하는 불사에 천신(天神)의 도움이 등장한다.
두 이야기 속에서 고대부터 한국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조상과 하늘을 공경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일연은 이 이야기들을 고대 한국에 전해진 불교의 종교적 심성에 투사해 전하고 있다. 특히 하느님에 대한 고대 신앙은 고대 한국인들의 공통 조상과 깊은 관련을 갖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왔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성의 전생과 현생의 효처럼 조상에 대한 깊은 효와 관련이 있다. 이는 본래 불교에서 승려의 출가수행이 기본적으로 속세의 부모와 인연을 끊는 것과는 대조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일연은 이를 불교 신앙심과 연결하는 내용으로 구성해 처음과 끝에 배치해 강조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 곰 토템 흔적과 하느님의 도움이 등장하는 것은 고대 한국인들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외래 종교인 불교와 전통 신앙과 일상 삶의 효를 습합하는 과정의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는 불교가 유입될 당시 고대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있는 신앙심과 효 이야기를 불교에 투사해 격의한 불교 이야기로 보인다. 일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현존재의 시원과 실존적 삶에 대한 영감을 주고 있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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