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마주치기 싫어 온종일 방안에 처박혀 있으면 낮인지 밤인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사회와 단절된 채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 72.9%가 ‘이웃과 교류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웃과 단절된 생활환경은 우울증, 대인기피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고시원 거주자들이 꼽은 주거 생활의 어려움으로 우울함을 포함한 ‘외로움ㆍ고립감’이 27.8%(복수응답)로 집계됐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고시원 생활은 본인 주거지에 대한 부정(否定)으로도 이어진다.
수원시 장안구 한 고시원에 사는 양희상씨(50대ㆍ가명)는 “고시원에 사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측은한 눈빛도 받기 싫어 누구에게도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홀로 고립된 고시원 거주자들은 기댈 곳이 없어 술에 의존하다 결국 강력범죄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11일 고양시의 한 고시텔에서 50대 남성 A씨가 앞방에 거주하는 B씨(50)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범행 직전, A씨는 B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고시원으로 돌아온 뒤 선풍기 사용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단절된 삶의 방식과 함께 채광 문제도 고시원 거주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데 한 몫한다. 사람의 하루 리듬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등은 햇볕에 의해 분비된다. 그러나 사방이 꽉 막힌 어둡고 비좁은 주거복지 사각지대 공간의 거주자들은 해당 호르몬이 부족해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보증금이 없는 데다 월세가 저렴한 고시원을 찾는 상당수 사람은 경제적 빈곤 계층으로,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월세 낼 돈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거리에 나앉게 되는 고시원 특성은 이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취약한 방음벽은 교류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어 고시원 거주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시 계양구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고시원 거주자들의 정신건강을 중점 관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점은 이들 스스로가 주거 빈곤층이라는 사실에 자책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 중 우울증 고위험군에 속한 거주자들도 포함돼 있어 이들이 겪는 정신건강 위험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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