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서 빽빽하게 자리 잡은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과거 도심 주거지역들이 재개발로 부서지고 소멸하면서 생긴 아파트들이다. 철거와 재개발의 경계에서 남은 도심의 흔적을 기록한 전시가 오는 21일까지 대안공간 봄에서 진행된다. 사진작가 박영환의 전시 ‘그대 떠난 빈 자리엔…’이다.
박영환 작가는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수원시의 재개발 구역을 카메라로 담아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매교동, 세류동, 인계동, 지동, 정자동을 다니며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과 완전히 철거되기 전의 모습, 소멸하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희망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박 작가는 “재개발을 앞둔 곳을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문득 ‘아픔’이라는 감정을 느껴 울컥했다”며 “재개발로 옛 모습이 사라진 도시를 사진으로 남기고자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다. 부서진 콘크리트, 재개발로 떠나 주인 잃은 고양이, 버려진 가구와 그 사이 틈으로 피어난 꽃, 허름해 칠이 벗겨진 문짝, 사람이 사라지자 급속도로 번진 곰팡이 등 소멸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담아냈다. 박 작가는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그만큼의 흔적이 남는다”라며 “버려지고 없어진 것들이 가진 아픔과 그 속에서도 희망을 상징하는 것들을 찍었다”고 말했다.
거의 다 무너져 가는 주택가와 공사를 알리는 출입금지 팻말과 깨진 유리문,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와 떨어진 천장과 부서진 변기 등은 재개발로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이별, 아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박영환 작가는 아픔과 동시에 상처를 달래고 희망을 주는 요소도 담아냈다.
없어지는 공원에서 부서지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놀이기구와 부서진 건물 옆에 자리 잡은 장미꽃, 버려진 물건들 옆에서 자란 이름 모를 풀들은 소멸 속에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끈질긴 생명력, 위로를 의미한다.
박영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수원시내 곳곳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곳을 사진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생산이 중단된 공장, 오래된 보호수 등이 그 대상이다. 박 작가는 “없어지고 모습이 바뀌게 되면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기 쉽지 않고 금방 잊힌다”라며 “다시 찍을 수 없는 것들이니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 수원의 모습을 함께 기억해주고 사진에 담은 감정을 공감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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