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세계기상기구(WMO)는 2019년에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5년 연속 기록적인 더위를 전망했다. WMO의 전망대로 지구촌은 지금 펄펄 끓고 있다. 북극권 최고 기온이 30℃를 넘는가 하면, 50℃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지는 지역들도 있다. 전례없는 살인적 더위에 수백명이 숨지고 산불이 일어나 도시가 파괴됐다.
기온 상승 탓에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지난해 세계적으로 폭풍, 홍수, 산불, 가뭄으로 생활터전을 잃고 살던 곳을 떠나 국내 실향민(이주민)이 된 사람이 3천70만명에 달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내부난민감시센터(IDMC)에 따르면 이는 전쟁과 폭력 사태로 인해 발생한 강제 실향민 수 980만명의 3배가 넘는다. IDMC 보고서는 “재난과 기후변화의 영향은 새롭고, 2차적인 강제 이주를 유발해 사람들의 안전과 복지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기후 난민’은 2050년이면 1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폭염은 예고된 재앙이다. 살인적 폭염은 올 여름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다. 뜨거운 공기가 지면을 돔 모양으로 둘러싸는 ‘열돔 현상’이 지속되면서 사우나에 갇힌 느낌이다. 40℃에 육박하는 가마솥 더위는 특히 노약자와 에너지 빈곤층의 건강을 위협한다. 폭염이 한달 이상 지속된 2018년에 온열질환자가 4천526명, 사망자가 48명이나 됐다. 올해도 노약자, 중증장애인, 취약계층 등 에너지 빈곤층의 인명 피해 우려가 크다.
에너지 빈곤층은 적정 수준의 에너지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되는 가구다. 197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간주하지만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는 아니다. 에너지 빈곤층은 겨울철 한파뿐 아니라 한 여름 폭염에도 취약하다. 노후주택ㆍ쪽방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헉헉대며 고통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여느 해보다 더욱 힘겹다.
우리나라엔 아직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의가 없다. 폭염이 일상화되는 상황이지만 에너지 빈곤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에 비상신호가 켜진 만큼, 빈곤 현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지원이나 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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