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늑장 대응으로 지탄받았던 ‘광명 살인사건’ 당시 112신고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도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한 뒤 경징계로 감쌌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19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경기남부청은 지난 2012년 4월 ‘오원춘 사건’ 이후 현재의 112신고시스템을 도입, 운용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으로 각 관서에 전파되는 지령은 주요 내용을 입력하는 사건개요, 부수적인 내용을 기재하는 참고사항 등 크게 2가지로 구성된다. 이 시스템은 경찰 운용의 기반이 되지만, 광명 살인사건 당시에는 오류가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17일 0시49분께 40대 여성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남성 B씨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의 집’이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접수요원은 곧장 ‘코드 제로’를 발령하고 지령을 전파했지만, 정작 가해자의 집을 언급했던 핵심 신고내용은 빠뜨렸다. 뒤늦게 녹취를 다시 확인하고 참고사항에 ‘B씨의 거주지’라고 입력했으나, 이번에는 시스템이 문제였다. 지령요원도 동시에 참고사항을 입력하며 재차 가해자의 거주지 정보가 누락된 것이다.
이때 112신고시스템에 지령을 입력하고 2초 이내 다음 지령을 입력하면 앞선 내용이 누락되는 문제가 처음 발견됐다.
그러나 이후로도 경기남부청 상황실은 지령 누락을 인지하지 못했고 현장에선 기약없는 탐문수사를 벌여야 했다. 현장 확인이 늦어지자 광명경찰서 상황실은 피해자의 신고 녹취를 재확인했고, 뒤늦게 가해자 이름이 누락된 사실을 알아챘다. 최초 신고 이후 38분 지난 시점이었다.
경찰은 이로부터 12분 만에 B씨의 집을 찾았지만, A씨는 이미 살해당한 뒤였다.
112신고시스템에 결함이 생기면 초동조치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사건 당시에도 시스템 오류로 가해자의 집을 찾아내는 데 총 50분이 걸렸다. 처음부터 문제없이 가동됐다면 안타까운 목숨을 살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찰이 결함을 숨기기 위해 직원들의 과오만 있는 것처럼 묵인하고 경징계로 덮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로 사건 당시 상황팀장 H 경정은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에 그쳤고, 나머지 접수ㆍ분석ㆍ지령요원 등 3명은 불문경고 조처됐다. 경고는 경징계 사유에도 못 미치는 경미 사안일 때 내려지는 처분으로, 엄밀히 따지면 징계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 관계자는 “사건 당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튿날 경찰청에 요청해서 바로 개선했다”며 “직원들도 과오가 있어 징계를 받은 것이고 사안을 숨기려 했던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피해자 A씨의 자녀는 지난 2월22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경찰은 (현장 출동에) 늦었음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경찰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일어난 사망사건에 대해 처벌과 사과, 제도적인 개선을 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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