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일 사이에 경제마찰을 겪어온 지 2년이 흘렀다. 지난 기간 문제였던 핵심 소재에 대한 국산화를 추진하고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31.4%에서 24.9%로 감소하는 등의 성과가 있다. 그러나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본다면, 일본에 대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의존과 이에 따른 무역역조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126억7천만 달러로 지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점이 이를 반증한다.
기술국산화와 대일 무역역조 개선을 100m 레이스에 비유한다면, 문재인 정부에서의 지난 2년간의 노력은 이제 5m 정도 달리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소부장 국산화는 어려운 길이고 길게 보고 가야 할 과제다. 특히 이번에 문제로 나타난 소재보다 부품장비 쪽 일본 의존이 전체 대일 무역적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을 보면, 앞으로 이 분야 국산화 추진이 최대 과제로 보인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고착화된 일본에 대한 소부장 기술 의존과 무역역조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재기술이 취약했던 우리경제가 일본의 소부장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수출주도형 성장을 빠르게 실현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성공과 일본기업 추월은 일본으로부터의 소부장 수입 없이는 불가능했다. 삼성전자는 일본 소부장을 활용해 만든 반도체와 휴대폰을 일본에 수출해왔고, 현대차는 일본의 전자부품을 수입해 만든 전기차 아이오닉5의 일본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 기술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본 기술을 활용해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한일 갈등이 고조하면 한미 관계 또한 위기에 봉착하며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어렵다. 남북관계를 풀어가거나 중국의 강한 압박을 넘어서기 위해서 ‘일본 카드’를 잘 활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결국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투 트랙’ 방식에 철저해야 한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은 그것대로 해결하며 이를 경제와 안보 문제에 결부시키지 말아야 한다.
정승연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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