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순 칼럼]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공약이 의미하는 것은

대통령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후보자 검증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후보자 검증 대상으로는 도덕성과 자질, 정책을 주로 다뤄왔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으며 요소 간에 상호 연결돼 있기도 하다. 물론 어떤 요소가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그 나라의 정치 문화, 국민의 정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 요소를 통합적으로 검증하는 것엔 이견이 없으나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후보자 검증은 무분별한 메시아적 추앙에 기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주권재민 실현을 위한 과정이다. 시민들은 불안을 해소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길 바라는 자신의 바람을 정치인에게 투사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이 정치인에게 갖는 열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정치적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 관심을 악용해 마치 이 나라를 악으로부터 구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등장했던 사람들은 혹독한 현실 정치를 견디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 사라져 갔다. 검증 없는 팬덤 정치의 결말은 실패로 끝난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봤다. 이처럼 후보자 검증은 구원자를 행세하며 국민을 혹세무민하는 정치인을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공존을 위한 약속, 그 약속을 이행할 정치적 역량과 시스템을 철저히 검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선거의 핵심 요소는 ‘약속’이다. 독일 출신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측불가능성의 바다에서 예측가능성의 섬을 만들고 신뢰성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약속이라고 했다. 인간은 다원성을 지니고 있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예측불가능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속은 사람들의 행위 결과를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보완하는 행위다. 또한 다원적인 인간관계와 그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호 약속(계약)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탁월한 개인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약속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기후 변화, 팬데믹, 인구와 산업구조의 변화, 불평등 문제 등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예측가능성의 섬을 위한 공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약은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공약과 괘를 같이 한다. 정당의 역량이 곧 후보자의 역량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발자취와 정체성, 정치 철학과 국정운영의 방향, 시대정신과 미래 비전을 모두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 언론은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의 적실성뿐만 아니라 공약의 이행 가능성, 제약된 조건들을 고려 또는 개선할 수 있는 역량, 그런 일련의 과정을 책임져야 할 후보자의 의지와 리더십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약을 후보자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 시민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민이 참여해 공동체의 새로운 규범과 정책을 공동 생산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과 행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말과 행위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공적 약속’인 공약(公約)이 아니라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성찰과 변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정책공약의 적실성, 이행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이것이 예측가능성의 섬을 위한 약속을 만드는 과정이다. 시민들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매니페스토 선거가 되길 바란다.

오현순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