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은 사실 우리 역사상 복지행정의 선구자다.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도 그랬지만 특히 충청도 아산 현감으로 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것이 떠돌아다니는 걸인들을 한 곳에 몰아 수용하는 ‘걸인청’을 만든 것이다. 조선 중엽, 이 땅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는 백성이 많았다. 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걸인청을 만들고 정부 보유미를 풀어 굶어 죽는 백성이 없게 했다. 그러나 공짜로 먹여주는 대신 가마니 짜기, 염전에서 소금 만들기 등 생산적 작업을 하게 했다. 복지행정의 혁신적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지함의 복지정책에 심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 현감을 도와 일해야 하는 아전들의 불만이 컸다. 모든 아전들이 누추한 걸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지함이 갑자기 죽게 된 것도 이런 복지행정에 반발하는 아전들의 흉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이지함이 지네를 먹었다. 밤을 먹어야 하는데 이지함에 불만이 많았던 아전이 밤같이 생긴 버드나무를 깎아 주자 그걸 먹고 그만 지네의 독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국가의 존립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민이 모두 굶지 않고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며 주택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른바 복지다. 결국 정치의 기본도 여기에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정권의 방편으로 변질되는 것이 문제다.
최근 한 자치단체장이 초등학생들에게 매월 2만원씩 용돈을 지급하겠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관내 어린이들에게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것인데 그 단체장은 이렇게 해서 어릴 때부터 지역 사랑정신과 경제교육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연간 10억원을 세금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계속됐다.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복지국가라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용돈까지 주는 나라가 있느냐는 소리도 나왔다. 결국 지방의회에서 부결됐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곳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서 바로 이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선거가 겹쳐 있기 때문에 경쟁이라도 하듯 ‘복지’의 가면을 쓴 포퓰리즘이 난무할 수 있다.
허경영씨가 주장했던 연애수당 30만원 지급이라든지, 대학 진학하지 못한 청년에게 1천만원 지급 같은 공약이 나올지 모른다. 이런 허망한 선심성 공약은 ‘젊은 세대 바람’에 편승해 젊은 층을 향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의 의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캠퍼스에 전등을 꺼주고 전기료보다 몇 배 되는 인건비를 받는 노인들도 이 같은 일들이 결국 세금으로 국민 부담을 키우는 것이고 자식들에게 빚으로 남겨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국민의 ‘눈높이’는 자꾸만 높아지는 것이다.
한 때 ‘공짜라면 양잿물(독약)도 좋다’는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국민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수준에까지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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