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자체에 등장한 평화 상징 한반도기(旗)/‘종북쇼’ 거부감 보인 시민 많음도 알아야

한반도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이다.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북이 구상했다. 단일팀 성사를 대비한 깃발이었다. 실제 사용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처음이다. 현정화(남)ㆍ이분희(북)의 선전이 유명했던 대회다. 이를 소재 삼은 영화 ‘코리아’ 속에도 한반도기가 넘쳐난다. 그 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은 동시에 입장했고, 한반도기가 맨 앞에 섰다. 그때 한반도기는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념이 섞여들었다. 한쪽은 평화ㆍ통일의 상징이라 여겼다. 진보 진영이 주로 그랬고, 현재는 친여 성향이다. 반면 종북 좌파의 상징으로 여기는 쪽도 있다. 일부 보수 성향이 그랬고, 현재는 야권 성향이다. 갈등의 정확한 시점은 알 순 없다. 다만 평창 동계 올림픽 등 문재인 정부 들어서 커진 것만은 틀림없다. 참 아이러니 아닌가. 한반도기를 처음 사용한 건 보수ㆍ군부 정부였다. 노태우 정부가 만들어 썼다.

그랬던 논란이 어제오늘 우리 주변에 있다. 수원시와 안양시의 한반도기 게양이다. 수원시가 14일 청사에 한반도기를 게양했다. 이벤트도 있었다. 염 시장이 제2부시장, 수원시의회 의장 등과 함께 한반도기 앞에서 ‘남북합의이행’이라고 적힌 카드섹션을 펼쳤다. 오는 31일까지 게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염 시장은 ‘광복 76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며 불필요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더 큰 논쟁은 안양에서 생겼다. 안양중앙공원 둘레길에 55개가 등장했다. 6ㆍ15 공동선언실천경기중부본부가 진행하는 ‘공감평화공원’ 행사의 일환이다. 행사비용은 안양시가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했다. ‘한반도 70년 전쟁과 대결, 이제는 끝내자’는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도 내걸렸다. 시민의 비난 목소리가 있다. 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태극기 존엄성을 훼손했다’는 등 비난 글이 이어졌다. 항의 전화도 있다.

근거 없는 갈등이다. 역사 없는 갈라치기다. 소모적일 뿐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런걸 굳이 지자체에서 해야 했나. 안양중앙공원에 수십개씩 게양하는 행사가 필요했나. 시민 댓 명만 모여도 불법이라며 막아선다. 그런데 여기는 허가하고 지원했다. 수원시도 그렇다. 수원시장과 시 의장이 푯말까지 들고 ‘한반도기 이벤트’를 해야 했을까. 일각의 ‘종북 찬양’ 주장에 동의 않는다. 그렇다고 ‘한반도기 행정’까지 이해되는 건 아니다.

염태영 시장은 향후 정치일정으로 ‘경기도지사 도전’을 상정하고 있다. 많은 시민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이 이번 이벤트를 보며 다양한 해석을 전해온다. 정치적 존재감 높이기라는 해석도 얘기하고, 문재인 정부 친여 단체 껴안기라는 해석도 얘기한다. 우리가 그의 셈법을 알 길은 없다. 다만, 이번 한반도기 이벤트가 수원시민들에게 아주 어색하게 여겨졌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노이즈 마케팅이냐’고까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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