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꽃자리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많이 본 문구지요? 저는 아주 오래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처음 봤습니다. 문구의 의미가 강렬해서 당장 머릿속에 새겨 넣었지요. 화장실 깨끗이 써달라는 부탁이지만, 인생사 여러 경우에 두루 쓸 만한 경구로 여겨 그리하였습니다.

인생사에서 ‘자리’ 참 중요하지요. 평생 서로 ‘자리 차지하기 게임’하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겪는 수직적 자리다툼은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 한 평생 겪는 스트레스이지요. 계층의 사다리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 그 못지않게 올라가고 싶은 욕망. 이런 것이 마구 뒤섞여 편안한 마음인 날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때로는 긴장도 되고 자극도 돼, 삶이 다 그러려니 하면서 긍정 모드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어쩌다 보니 새 직장을 구해 자주 옮겨야 하는 트랙에 몸을 맡긴 지 오래됐습니다. 임기가 차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불편과 불안이 말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위안이 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앞의 경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주는 말입니다.

지금 있는 지위에서 밀려나면 어찌하나 하는 불안이 밀려올 때는 성경 마태오 복음의 한 구절을 불러옵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품삯을 두고 다투는 일꾼들을 본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누구나 늘 첫째가 되길 강요하는 사회, 꼴찌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 능력우선주의 사회에 울리는 경종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사회적 이동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940년대 세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국 하버드대학 입학을 ‘능력주의’ 방식으로 바꾸는 코넌트 총장의 시도를 소개하고 있지요. 지금은 그 능력주의가 또 다른 계층을 형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높은 사회적 이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공정한 사회의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동성을 강조하다 보면 ‘지금 여기’를 소홀하기 쉽습니다. 머문 자리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당장 지금 여기가 중요한데 말이지요. 매사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선은 편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 저는 지난해 작고한 공연계의 어른이 평소에 자주 들려주던 시 한 편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가 인생의 좌우명이라며 소개한 구상 시인의 시 <우음(偶吟)2장>입니다. 팬데믹으로 울적한 요즘, 서로 위로하는 기분으로 이 시를 읽으며 ‘문화카페’를 떠납니다 .

“1.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2.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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