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仁荷大學校)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移民)인 하와이 이민자들의 피땀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듬고 있는 대학이다. 1953년 하와이 교포들이 보내온 성금 15만 달러가 이 학교를 세운 직접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을 떠난 뒤 1903년 1월13일 새벽 하와이 호놀룰루에 닿아 정착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은 86명이었다. 그리고 그 뒤 1905년 이민이 금지될 때까지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사람은 모두 7천226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길거리에도 금이 깔려 있는 지상낙원’이라고 소문이 난 미국으로 가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에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탕수수밭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된 노동에 아주 적은 임금, 백인 감독들의 횡포, 그리고 극심한 인종차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참할 만큼 힘든 생활 속에서 어렵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기꺼이 내놓았다. 1918년에는 호놀룰루에 ‘한인기독학원’을 세워 광복이 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국의 얼을 잊지 않도록 했다. 그 뒤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맞은 1953년,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이 학원 터를 팔아 얻은 15만 달러를 한국에 보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한 공업고등교육기관을 세우는 데 보태 써달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1954년 이 돈에 민간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을 더한 515만500달러로 인하대학교를 세웠다. 현재의 학교 위치도 이 대통령이 인천시내 후보지 몇 곳을 직접 답사한 뒤 정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의 이름도 인천(仁川)의 ‘인(仁)’ 자와 하와이의 ‘하(荷)’ 자를 따서 ‘인하(仁荷)’라고 지었다. 당시에 하와이를 한자로 ‘荷蛙伊’라 썼기 때문이다. 한자 ‘荷蛙伊’는 그 글자들의 뜻과는 아무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하와이라는 이름을 나타낸 것이다. 그 뒤로 인하대는 이런 사연에 보답하듯 꾸준히 성장해 국내 유수의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인하대가 요즘 교육부의 ‘2021년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최근까지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갑자기 무척 낮은 점수를 주어 마치 부실한 대학과 같은 인상을 받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교수·학생 등 대학 구성원은 물론 동문들과 많은 인천시민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평가 경위와 내용을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연한 반발이고 요구인 만큼, 하루빨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다시 이뤄져 인하대가 역사와 실체에 걸맞은 명예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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