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크리에이터] 발효 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청국장 어벤져스’

▲ 경기도 광주시 광진기업 발효 공방에는 다양한 분야의 공학도가 한데 모여 '냄새 없는 청국장' 을 만들고 있다.
▲ 광진기업 발효 공방에는 다양한 분야의 공학도가 한데 모여 '냄새 없는 청국장' 을 만들고 있다.

꼬릿꼬릿한 냄새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청국장. 아마 젊은 청년들에게 사업 아이템으로 청국장을 제시한다면 질색팔색 하며 손사래 칠지도 모른다. 소비율이 저조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청국장 소매시장 규모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18년에는 93.5억 원으로 2016년 대비 5.2% 감소했다. 반면 낫토 시장 규모는 2014100억 원을 넘어선 뒤 2017325억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의 전통음식인 청국장보다 일본의 낫토를 더 선호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식품공학, 수공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발효 공방 광진기업에 한데 모여 냄새 없는 청국장을 만들며 낫또 시장의 주도권을 따라잡기 위해 힘을 합쳤다. 이름하야 '청국장 어벤져스'다. 아이언맨, 헐크, 캡틴아메리카, 토르 등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뭉쳐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어벤져스처럼 말이다. 각자의 특기를 앞세워 청국장 시장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는 그들을 지난 17일 만났다.

공학도들이 뭉친 최정예 발효 식품 집단광진기업

경기도 광주시 열미리 숲속에 위치한 발효 공방은 1층 발효실, 2층 R&D 연구소로 되어 있다.  한쪽 벽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청국장 제조 공정을 볼 수 있다.
▲ 경기도 광주시 열미리 숲속에 위치한 발효 공방은 1층 발효실, 2층 R&D 연구소로 되어 있다. 한쪽 벽면이 통창이어서 청국장 제조 공정을 볼 수 있다.

광진기업 발효 공방은 물과 공기가 깨끗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열미리 숲속에 위치해 있다. 사방이 초록초록한 나무에 둘러싸여 피톤치드가 쏟아져 내리는 이곳은 일반적인 식품공장과 달리 시골 전원주택에 온 듯 친근한 느낌이다. 1층은 발효실, 2층은 R&D 연구소를 세워 발효기술 연구와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발효 공방에 도착하자 선우우연(41· 수공학) 대표와 직원들이 제품 생산에 여념이 없다. 특이한 점은 발효 공방인 만큼 특유의 콩 냄새가 조금이라도 날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냄새 없는 청국장을 만드는 공방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이곳 직원들은 대표를 포함해 모두 공학도 출신인데, 그래서인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아 일 처리가 빠른 분위기다. 모두 식품연구소, 수처리 엔지니어링 등 각 분야에서 10년 넘는 실무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다. 청국장 생산공정 표준화를 위해 공학을 접목하고 시스템과 발효의 변수를 함께 연구하며 최적화된 레시피를 찾는다고 한다.

▲ 직원이 청국장 발효 상태 검수를 하고있다.
▲ 직원이 청국장 발효 상태 검수를 하고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건물 한쪽 벽면이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야외에서도 발효 공방 내부가 훤히 보인다는 점이다. 누구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어 깨끗하고 안전한 제품에 대한 신뢰를 준다. 공방 안에는 청국장 발효상태 검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이 24시간 발효된 청국장을 꺼내 주걱으로 살짝 저어 올리며 테스트하자 나토키나제성분이 실처럼 쭉쭉 늘어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 공방 야외에서 어린이들이 '치즈 청국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 공방 야외에서 어린이들이 '치즈 청국장'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발효 콩 기반의 맞춤형 디저트를 만들어 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공방 야외에서 5세 어린이들이 청국장에 대해 배운 후 과일을 넣은 치즈 청국장을 직접 만드는 체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냄새가 강한 보통의 청국장과 다른지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먹고 만들며 신나했다.

자녀들과 함께 온 정시안씨(가명)아이들이 집에서 콩 반찬이나 청국장을 해주면 안 먹는다. 콩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디저트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색다른 청국장을 아이들에게 체험시킬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냄새 쏙, 영양 듬뿍! 전통식품 청국장의 변신

▲ 냄새 없는 청국장 제품은 '바이오 청국장', '치즈 청국장' 등이 있으며, 낫토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다.
▲ 냄새 없는 청국장 제품은 '바이오 청국장', '치즈 청국장' 등이 있으며, 낫토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다.

그렇다면 냄새 없는 청국장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광진기업의 청국장 어벤져스를 연상시키는 직원들에게 묻자 좋은 재료’, ‘’, ‘발효 방식등의 차별점을 꼽았다. 재료는 경기도 최북단 청정지역인 연천 비무장지대(DMZ)의 콩과, 열미리 숲의 맑은 물만 고집한다.

김기범(37· 식품공학) 연구실장은 연천 콩은 전국 콩 생산량 중 1%도 생산되지 않을 만큼 귀하고, 임금님께 진상될 만큼 품질이 좋다. 또 청국장을 발효할 때 큰 변수 중 하나가 물의 질인데, 열미리는 예전부터 물이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공방 입지를 정할 때 이 부분을 특별하게 신경 썼다. 때문에 저렴한 콩과 수돗물을 원료로 사용한 청국장과는 맛의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어떤 균종이 발효되느냐에 따라 맛과 냄새가 달라진다고 한다. 선우은영(37, 컴퓨터공학) 연구원은 볏짚에 묶어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은 고초균(유익균) 외에도 부패를 일으키거나 악취를 내는 잡균도 생성된다. 우리는 청국장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균은 그대로 두고, 냄새를 유발하거나 좋지 않은 맛을 나게 하는 균은 배제하는 식으로 균을 분리 배양했다고 밝혔다.

수년간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탄생한 대표적인 제품은 바이오 청국장이다. 끓이지 않고 낫토처럼 아침 식사용으로 바로 먹을 수 있다. 견과류, 과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청국장 샐러드’, ‘치즈 청국장등 영양가 높은 이색 간편식도 있다. 최근에는 치즈 청국장이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다.

청국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

▲ 청국장을 낫또보다 더 세계적인 식품으로 만들겠다는 선우우연 대표.
▲ 청국장을 낫또보다 더 세계적인 식품으로 만들겠다는 선우우연 대표.

이처럼 연천 콩과 열미리 물을 활용한 냄새 없는 청국장 개발로 선우우연 대표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굴한 로컬 크리에이터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청년 창업가들이 꺼려하는 분야 청국장. 선우 대표가 이토록 발효 식품 사업에 이끌려 공학도들과 함께 온 열정을 쏟아붓는 이유가 무엇일까.

선우우연 대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식품회사 퇴직 후 가족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고 직접 청국장을 만드셨는데 그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청국장이 식탁에서 점차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을 만들면 청국장을 다시 사랑받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창업을 하게됬다고 밝혔다.

그는 청국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낫또보다 더 세계적인 식품으로 인정받는게 목표다. 현재 낫또 형태 바이오 청국장이 하루 120kg(2천개) 정도의 생산량으로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시켜 판로를 넓힐 계획이다.

선우 대표는 이제 시작이지만 공학 기술을 적용해 생산공정을 표준화하고, 청국장을 식사 대용으로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도록 지금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청국장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다 보면 언젠가는 낫또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로컬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년들 중 발효 식품에 애정이 있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창업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함께 우리의 전통 식품 청국장의 위상을 높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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