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패럴림픽 성적 저조, 감동에 숨지 마라/장애인 생활 체육 지원 부족한 것 맞다

정호원이 힘들게 공을 입으로 밀었다. 표적 중앙에 절묘하게 위치했다. 최예진은 어렵게 머리로 공을 밀었다. 오차 없이 중심에 자리했다. 도쿄 패럴림픽에서 한국 보치아가 9회 연속 우승을 하는 순간이었다. 중증 장애를 극복한 선수들이었다. 어렵게 말하는 소감도 더욱 감동이다. 최혜진 곁은 어머니가 지켰다. 공식 경기파트너로 함께 메달을 수여받았다. 거기에 경기도 출신 김한수 선수와 그의 어머니도 있었다. 자랑스러웠다.

패럴림픽 전체 성적은 좋지 않았다. 5일 폐막된 대회 최종 성적은 금 2, 은 10, 동 12개다. 종합 순위 41위다. 떠나기 전 목표는 금 4개 등으로 종합 20위였다. 메달 집계나 종합 순위에서 모두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다. 1968년 첫 출전한 텔아비브(이스라엘) 대회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갑작스럽지 않다.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 7위, 2008년 베이징 대회 13위, 2012년 런던 대회 12위, 2016년 리우 대회 20위였다.

패럴림픽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성적으로 가늠할 수 없다. 성적을 화두 삼는 것 자체가 맞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기본 정신을 저해하는 얘기라는 비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성적을 논해야 할 이유일 수 있다. 패럴림픽은 한 국가의 장애인 복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차별 없는 체육 활동의 보편화를 엿볼 수 있다. 또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한 인간의 자아실현을 돕는 사회 제도적 복지를 측량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태권도를 예로 보자. 처음으로 패럴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됐다. 종주국인 우리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출전 선수 자체도 75㎏급 주정훈이 유일했다. 유아 스포츠 활동에 빠지지 않는 태권도다. 아파트 단지마다 태권도장 없는 곳이 없다. 몇만 원의 관비를 내면 누구나 태권도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비장애인들만의 얘기였다. 장애인들은 태권도를 배울 수도, 도장을 갈 수도 없었다. 패럴림픽 태권도 성적과 무관하지 않다.

수영, 양궁, 육상 등의 종목도 그렇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철저하게 정상인만을 대상으로 한 판단이다. 패럴림픽 엘리트 체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장애인 모두에 열어 놓는 생활 체육을 말하는 것이다. 그를 통한 저변 확대가 자연스레 선수층 확대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패럴림픽 감동은 선수들의 권리지만, 그 감동을 만들 책임은 국가에 있다. 우리가 패럴림픽 성적 문제를 얘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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