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8시께 찾은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290-3. 이 곳엔 초가을의 저녁을 즐기려는 이들로 가득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루프탑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직장인에 현대식 카페 사이로 옛모습을 간직한 한옥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20대, 성곽을 따라 도시의 풍경을 보며 가을바람을 느끼는 이들까지. 이곳에선 나이가 많든 적든, 혼자이든 여럿이 함께든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화서문과 성곽을 본떠 간판을 단 카페와 주택ㆍ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 골목 골목에 숨겨진 작은 소품 가게 등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매력이 이 거리에 담겨 있다. 이 곳은 수원 ‘행리단길’이다. 행궁동을 찾은 젊은층이 5~6년 전부터 마치 서울의 ‘경리단길’과 유사하다며 SNS 등을 통해 사진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붙여졌다.
카페에서 사진을 찍던 임경진씨(28)는 “행리단길은 술집이 가득한 다른 번화가와는 다르게 화성행궁을 보며 운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리여서 좋다”며 “코로나19 상황에도 야외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시의 신장동 쇼핑로도 이색적인 문화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오산 공군기지와 맞닿은 이곳은 외국어 간판이 즐비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미군의 패션부터 시장에서는 각국의 음식을 접할 수 있는 식당까지 다양한 문화와 즐길 거리가 있다. 때문에 평일에는 시민과 미군들의 놀이터, 주말에는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코스가 된다.
경기도 지역 곳곳의 길이 저마다 특색을 입고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고 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른 발걸음과 차로 스쳐 지나가던 곳에서 사람과 소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수줍게 시작된 첫 사랑, 동네 친구들과 놀이를 즐겼던 추억의 공간, 동네 역사를 꿰고 있는 노포까지 골목골목 피고 졌던 이야기를 담아내 살아 숨 쉬는 길로 재탄생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지난해 ‘2020 경기도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육성사업’으로 선정한 7곳의 도내 관광테마골목만 봐도 특색이 다양하다. 수원시의 화성 행리단길부터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음식거리, 평택시 신장쇼핑로 솜씨로 맵씨로, 김포시 북변동 백년의 거리, 이천시 도자예술마을 회랑길, 포천시 이동갈비 골목, 양평군 청개구리 이야기 거리 등이다. 올해는 고양시 높빛골 ‘그때 그 길’, 김포시 군하리 역사와 ‘힐링의 거리, 가평 경춘선 폐철길 시간여행 거리 등 7곳이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길에 사람이 머무르니 주변 동네도 되살아나고 있다. 경기도 관광과 관계자는 “도민들과 여행객들이 특색있는 테마를 가진 골목과 거리를 찾으면서 관광 경쟁력이 높아져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라며 “지역의 상인,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 가을, 다양한 이야기가 살아숨쉬는 경기도 곳곳의 길에서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속에는 우리가 켜켜이 쌓아올린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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