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캘리그라피 작가 단아 손영희...손글씨 ‘단아체’ 창조

월드컵 구호 ‘오! 필승 코리아’로 첫 유명세

손영희 작가
손글씨 '단아체'를 만든 손영희 작가가 '오늘 하루 선물입니다'라고 쓰인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황선주기자

“공방에서 소리치듯 손 글씨로 청산을 불렀다. 자연의 화두를 추구하며 표현의 형상화에 조금 더 물리적으로 접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구호 ‘오! 필승코리아’와 양평 6번 국도에 걸린 ‘양평 엄마야 누나야 양평 살자’의 글씨를 쓴 캘리그라피 작가 단아 손영희씨가 최근 전시회를 끝낸 뒤 한 말이다.

양평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손영희 작가는 지난 8월과 9월 약 두 달간 ‘단아 글씨야 청산가자’를 주제로 강하면 카페 카포레 컨벤션홀에서 글씨전을 열었다. 그는 전시회 주제를 ‘글씨야 청산 가자’로 정한 이유에 대해 “청산을 아우르는 대자연은 영감을 주는 페르소나였고, 청산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향해 떠나고자 하는 열망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1세대 캘리그라피 작가로 꼽힌다. 그가 처음 캘리그라피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40여년 전인 1970년대다. 당시만 해도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책상 위에서 구사하는 단순한 레터링(Lettering) 개념의 작업들이 전부였고 캘리그라피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손 작가는 미대를 갓 졸업한 뒤 화장품 회사 디자인실에서 패키지 디자인 작업을 하며 손글씨와 인연을 맺었다. 컴퓨터가 도입되던 시기였기에 광고에 손글씨를 접목하려는 참신한 도전을 시작했다. 매킨토시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한글 폰트가 개발되고, 여러 서체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손 작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독립해 서울 충무로에 사무실의 문을 연 뒤부터 스스로 캘리그라피의 깃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라는 워밍업을 거쳐 양평 외곽 산기슭에 공방의 둥지를 튼 이후 자신의 고유한 손글씨 영역을 개척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손글씨 단아체는 그렇게 해서 양평에서 태어났다. 단아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시원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때로는 엉뚱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대자연의 유장함과 인간사의 미묘한 어떤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3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한 이후에는 밤낮으로 무언가를 쓰고 고치고 일련의 작업들을 거치며, 치열의 도를 한 단계 높였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의 손글씨는 2002년 월드컵 때 처음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가 휘몰아 쓴 ‘붉은 악마’의 깃발 ‘오, 필승 코리아’가 단군 이래 최대 인파가 운집한 축제 한가운데서 신기루처럼 휘날렸다.

손 작가는 “표현의 자유분방함을 열망하는 본능이 제 안에 있어서인지 양평 외곽 백운봉 기슭에 공방의 둥지를 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여성으로서 굽 높은 구두나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치지도 않는다.

양평=황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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