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캠프마켓, 멋진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인천 부평의 미군기지 ‘캠프마켓’에 있던 제빵공장이 지난달 말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로 이사를 갔다.

이 제빵공장은 캠프마켓에 남아있던 마지막 미군 시설이다. 이곳에서 빵을 만들어 다른 여러 곳의 미군기지로 보냈기 때문에 그 이름에 시장을 뜻하는 ‘마켓(market)’이 들어간 것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미군이 갖고 있던 우리 땅 캠프마켓을 한국에 반환하는 사업이 일단 마무리됐다. 환경오염조사 등 남은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 터는 내년 4월쯤 오롯이 인천시민들에게로 돌아온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이곳에 미군이 주둔했으니 77년만이다.

하지만 이 땅에 시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39년 이곳에 ‘인천육군조병창’이 생겼고, 광복 뒤 그 조병창 자리 일부에 미군부대가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조병창(造兵廠)은 ‘병기(무기:兵)를 만드는<造> 공장<廠>’이라는 뜻이다. 일제의 조병창은 당시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었고, 총이나 화약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일제가 조선을 중국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겠다는 계산에서 이곳에 오사카 조병창의 지역 공장을 만든 것이다.

이 근처에 있는 백마장도 그 무렵에 생긴 이름이다. 부평 땅은 그 이전에 부천군에 속해 있었는데 대부분이 1940년 인천부(仁川府)가 행정구역을 넓힐 때 인천으로 들어왔다. 당시 인천 부윤(府尹:지금의 인천시장)은 나가이 데라오(永井照雄)라는 일본인이었다. 그가 인천의 동네 이름을 모두 일본식으로 고치면서 산곡리였던 이 동네 이름을 ‘백마정(白馬町:하쿠바죠)’이라 바꾼 것이다. 그때 이곳에 백마를 타고 훈련을 하는 군대 훈련장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이곳이 조병창 일대이니 군사(軍事) 활동과 관련된 상징적인 뜻에서 이런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본의 제국주의 군대와 관련돼 생긴 이름을 광복 뒤에도 제대로 된 우리 이름으로 바로잡지 않았다. 그 탓에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町(정)’만 발음이 비슷한 ‘장’으로 바뀌어 ‘백마장’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런 사연과, 이곳 조병창에서 병원으로 썼던 건물의 철거 여부를 두고 요즘 논란이 큰 것을 보면 조병창이나 백마장이나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 조병창을 이어받은 미군기지까지 이제 모두 떠났다. 인천시는 이 터에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던 곳, 우리 땅인데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이곳에 멋진 공원이 들어서 이전의 아픈 역사를 말끔히 씻어주었으면 한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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