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다. 비까지 쏟아져 가을은 건너뛰고 겨울이 앞당겨 온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온이 따뜻해 반소매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고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추위에 모두 두꺼운 옷을 껴입고 종종걸음을 한다. 자연 앞에 무기력한 것이 사람임을 실감케 한다.
산사에는 추위가 조금 더 빨리 찾아온다. 대부분 절이 산에 있는 까닭이다. 광릉 숲 곁에 자리한 25교구 본사 봉선사에도 가을과 겨울이 함께 물들어가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가족끼리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지구촌 인류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역시 이로 인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2차 백신 접종률이 7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묵묵히 참고 인내하면서 방역수칙을 지켜온 결과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예전의 일상으로 조금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찰이나 성당, 교회도 이 변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과 단절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 것이 종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마거사도 말씀하기를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했고 부처님도 ‘중생들이 괴로우면 당신도 괴롭다’고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종교는 사람들이 그동안 소홀하게 여겨온 내면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현대문명이 짧은 기간에 극도로 발달하고, 물질을 우선하는 풍토가 확산돼 왔기에 코로나19같은 무시무시한 감염병이 창궐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탐욕과 이익을 앞세운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 안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현대사회와 물질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선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없다. 나 자신이 중요하듯 남도 중요하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이 중요해진 오늘날이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맑은 마음과 행동이 모일 때, 모두가 상생하고 화합하는 길이 열리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봉선사에는 연못이 있다.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오염되지 않는 연꽃을 보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오탁(五濁) 또는 예토(穢土)라고 한다. 다섯 가지 번뇌가 세상을 더럽히는 ‘진흙 같은 세상’이란 의미다. 그런데 연꽃은 오탁과 예토에 있지만, 거기에 물들거나 휩쓸리지 않고, 여여하게 꽃잎을 피워낸다. 그렇다고 저 혼자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꽃들,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렇기에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 한다.
요즘 날씨를 보면 금세 겨울이 올 것만 같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바라보면 우리를 지금 힘들게 하고 있는 코로나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채 공존하는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이 어려운 난관을 우리 모두 이겨냈으면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저마다의 마음에서 연꽃을 피워낼 수 있는 뜻 깊은 삶이 됐으면 좋겠다.
오봉도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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