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가을 가로수 아래서 이영훈을 그리다

가을이 저물어 간다. 싱그럽던 가로수도 어느새 마지막 낙엽을 떨구며 여위어 간다. 이즈음을 장식해 주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바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아름다운 반주로 인해 이문세 노래 가운데 인기가 많은 곡이다.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는 이영훈이다. 가수 이문세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이문세의 페르소나’라고나 할까. 이영훈은 ‘대한민국 발라드의 대명사’라 불리는 전설적인 작사가요 작곡가다. 원래 이영훈은 연극, 방송, 무용 등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1985년에 대중음악 작곡가로 데뷔하면서 당시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의 소개로 이문세와 만난다. 서로의 진수를 알아본 두 사람은 바로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6개월에 걸쳐 8곡을 완성했고, 그 중 한 곡이 바로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였다. 이 노래는 KBS의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를 거머쥐는 대히트곡이 됐다. 이영훈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작사가, 작곡가로 부상한 것이다.

이후 이영훈과 이문세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최고의 작곡가-가수 콤비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불후의 명곡들을 선사했다. 사실, 당시까지 우리 대중음악은 일본색 짙은 소위 ‘뽕짝’으로 불리던 트로트와 서양의 팝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영훈에 의해 ‘한국적 팝 발라드’가 개척이 되고 완성됐다. 클래식에 우리 정서를 섞고 휘젓고 새롭게 빚어낸, 일종의 ‘퓨전’, 한국 고유의 팝 발라드를 창조한 것이다. 클래식에 바탕을 둔 화성적인 안정성과 구조적인 완결성을 중시했으며, 아름다운 가사로 대중성을 획득하면서 품격을 유지하는 새로운 대중음악의 조형방식을 제시했다. 그것이 대중의 가슴에 촉촉이 파고든 것이다.

그러기까지 그의 순수한 음악적 영혼과 투철한 장인정신이 모조리 바쳐져야 했다. 그를 다룬 인터뷰 및 아들의 회고에서, 이영훈은 거의 강박에 가까운 태도로 작곡에 임했음을 본다.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 커피 40잔, 담배 4갑을 피우며 밤을 새가면서 곡을 써냈다고 한다. 특히 가사 쓰기에 전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행동이 건강에 크게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사·작곡에 대한 일념으로 몸을 해치면서까지 곡을 써냈으며, 결국 대장암으로 47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만다.

깊은 성찰을 거쳐 피땀을 짜내며 완성한 이영훈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꾸준히 흐르고 있다. 이문세의 목소리로, 후배 가수들의 음성으로 빈번하게 애창되기에 그의 부재가 좀처럼 실감되지 않는다. 이영훈이 떠난 지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뚜렷하게 빛을 발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 가로수 그늘 아래서 그 빛 이영훈을 그린다.

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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