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 증권사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사내 리서치센터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를 감수하고 개선하는 일이었다. 타인과의 협업인 만큼 순조로울 때도 덜컹거릴 때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피곤한 때가 외래어 표기를 놓고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내가 속한 편집팀이 국립국어원의 지침, 언론ㆍ출판계의 표준안을 권고하면 다른 직원들이 이에 반발하는 구도다.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 Volkswagen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어 기준으로 표기하면 폴크스바겐, 영어 기준으로 표기하면 폭스바겐이다. 독일 회사다 보니 ‘엣헴’ 하는 사람들은 폴크스바겐을 권고하나 대다수는 폭스바겐을 훨씬 친숙하게 여긴다. 실제 국내법인 역시 ‘폭스바겐코리아’로 등록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나름 절충안을 취하고 있다. 독일 본사를 지칭할 때는 폴크스바겐으로, 국내 법인을 지칭할 때는 폭스바겐으로 쓴다. 한 기사에 둘 다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폭스바겐코리아의 폴크스바겐 부문’ 같은 식. 가끔은 자기들도 헷갈리는지 폴크스바겐과 폭스바겐을 마구잡이로 오가거나 반대로 쓸 때도 있다.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우리 일상 곳곳이 이렇다. 작곡가 Mozart의 표준 표기는 모차르트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모짜르트로 표기한다. 심지어 모찰트, 모짤트로 쓰는 사람도 제법 된다.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역시 도스토예프스키, 도스또옙스끼 등이 두루 쓰인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문제는 이런 탓에 수많은 정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구글 등 포털에서 검색할 때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로 검색하면 그렇게 작성된 글만 뜨고, 모짤트로 검색해도 역시 그렇게 작성된 글만 뜬다. 만약 정말 중요하고 특별한 정보를 담은 글이 모짤트로 쓰였다면? 대다수 사람은 그런 글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요긴한 글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매번 모차르트, 모짤트 등을 일일이 입력해서 한꺼번에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정보의 축적과 교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또 한국어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5천200만명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언어인데 그 안에서도 이런 식으로 정보가 줄줄 새니까 말이다. 실제로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층은 어지간한 검색은 영어로 한다. 애초 정보의 양과 질 모두 영어가 압도적인 와중에 기껏 존재하는 한국어 정보마저 활용하기 애매하다. “어느 바보가 구글링을 한국어로 해?”라고 말하는 이도 꽤 된다.
그럴 때면 한국어로 글을 쓰는 한국인 작가인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반박하고 싶어도 그럴 명분이나 근거가 없다. 한글의 간결함과 우수함을 예찬하는 홍보물을 봐도 ‘국뽕’에 차오르는 대신 ‘지금 저럴 때가 아니지 않나?’ 하며 갸웃거린다. 독자적인 문자를 가졌다는 건 뿌듯한 일이나 달리 보면 고립되는 측면도 다분하다. 한마디로 양날의 검. 나는 문자보다 정보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뚜렷한 타개책이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 실시간 영한 번역 기술이 더 발전하는 것 정도가 현실적으로 보인다.
홍형진 작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