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다 차렸으니 식사하세요.”
이 문장의 화자(話者)는 누구일까. 대부분이 ‘여자’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꽤 오랜 시간 우리네 글에서 양성은 편견적으로 그려져 왔다.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탓인지 남자는 반말을, 여자는 존댓말을 쓰고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안살림을 하는 게 낯설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성 평등 의식이 강조되면서 그때는 맞았던 것들이 이제는 틀리게 됐다.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언어나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 공직은 물론 교육계, 예술계도 예민해지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출판된 책들이 개정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 새로 고쳐지면서 시대에 맞게 거듭나고 있다.
먼저 청소년 필독도서로 꼽히는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너도 하늘말나리야>와 후속작 <소희의 방>, <숨은 길 찾기> 등은 지난 9월10일 개정판으로 재탄생했다. 기존에 불필요하게 묘사된 외모,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문장 등이 수정됐다.
여성학 바이블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 스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도 9월께 전면 개정됐다. 원작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48년 만에 오역 등을 바로잡은 셈이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인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로 고쳐졌다.
이 같은 변화 흐름은 고전에서도 나타난다. <세계문학전집>으로 유명한 출판사 열린책들은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남성과 여성의 존칭 등을 수정해 개정판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열린책들은 책을 옮기거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처녀작’, ‘계집애’ 등 표현을 쓰던 관행을 없앴다.
지난해 <유진과 유진> 개정판을 낸 출판사 밤티는 “내용을 바꾸지 않되 문장은 더 쉽게 읽히도록 보완했다”며 “오래된 작품들이 마냥 ‘뒤처진 시대감각’을 가질 게 아니라, 꾸준히 변해 ‘오늘의 고전’이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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