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비극적인 여성작가’, ‘비극적인 생애’, ‘페시미즘’. 1980년대, 한국 추상미술 대표 화가 최욱경 작가를 이르는 말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최욱경 작가의 작품과 활동을 조망했다. 지난 27일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다.
이번 전시는 최욱경 작업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시집 등 미술과 문학이 연계되는 다층적인 지점들에 주목해 최욱경의 작업 전반을 새롭게 읽어볼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선이 굵은 회화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10여점을 공개하게 됐다”며 “최욱경 작가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벗어나 그의 예술이 위치한 좌표를 재탐색하고 미술과 문학이 연계되는 자층적인 지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연대기를 나눠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1963~1970년)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1971~1978년)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1979~1985년) ▲에필로그 거울의 방 :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1986년 이후, 자화상) 등 총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하단)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99㎝ / '화난 여인, 1966, 캔버스에 유채, 137×174㎝'
첫 번째 섹션에서는 자유로운 붓 터치를 느낄 수 있는 ‘앨리스 기억의 파편’을 중심으로 최욱경 작가의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다. 미국 유학에서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최 작가의 심정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특히 서예, 민화, 단청 등 한국의 전통미술과 문화를 연구함과 동시의 뉴멕시코의 이국적인 자연풍경을 그려 규모가 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섹션인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에서는 한국에서 미술교육자로 활동한 그의 작품과 과감하고 화려한 작품에서 벗어나 다소 연한 색을 사용해 절제된 선과 구성을 강조하는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최욱경 작가의 주변의 산과 자연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마지막 섹션에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최욱경의 자화상과 그의 이력, 물건이 전시돼 있다. 자신을 제한된 시각으로 바라보던 ‘거울’을 깨고 관객들이 현시대에서 최욱경을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작업실과 방에 그린 그림, 제자들을 가르치던 흔적, 출간한 시집, 이력서 등 외부적 시선과 달리 최욱경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여러 모험을 통해 성장해가는 ‘앨리스’처럼 꿈과 현실, 각국을 여행하며 자신을 성장시킨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최욱경 작가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했다”며 “작고 이후 전시가 계속되는 만큼 최욱경 작가의 이력은 계속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 더욱 많은 그의 경력이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최욱경 예술가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평이다.
직장인 서수현씨(42‧성남)는 "최욱경이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가 추구해 온 삶과 예술의 깊이를 깊숙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면서 "단순히 비극적인 여성 예술가로만 알았는데 불꽃처럼 살다간 삶이 오랫동안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람객 지성은씨(33‧과천)도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 화가로만 알았는데, 전시를 보니 그가 예술활동을 할 때의 심경과 진심 등이 느껴지는 것 같다"면서 "한 예술가가 가진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의 삶을 다양하게 조망하는 전시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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