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2028년까지 도내 모든 태실 발굴, 문화재 지정 노력”
한국사의 다양한 위상을 밝힐 단초들이 경기지역 ‘태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4일 오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산 11-1 일대. 가파른 뒤태봉을 95m쯤 오르자 태실유구 3기와 비좌수혈 2기, 태함 3기가 출토된 모습이 보였다. 이 유적들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지난달 20일 발굴조사를 마치고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한 ‘성종왕녀 태실’이다. 광주에서 조선왕실 태실이 발굴된 첫 사례이자, 태실유구 3기가 나란히 발굴된 전국 최초의 사례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한 뒤 그 태(胎ㆍ태반과 탯줄)를 봉안하는 곳이다. 만들어진 위치, 구조 등에 따라 당시 역사적 상황을 분석할 수 있다. 태실 주변엔 비석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 곳에서도 안태비(아기비)가 발견됐다. 안태비의 기단비로 추정되는 직육면체의 화강암 석재가 산비탈에 비스듬히 노출돼 있던 게 이번 조사의 시작이었다.
5m 간격으로 놓인 원형의 태실유구 3기는 조성할 당시의 흙층과 도굴 이후 매몰된 흙층으로 나뉘어 발견됐다. 이 흔적에서 알 수 있듯, 태실 3기는 모두 도굴된 상태였다. 태함이 자취를 감추면서 태실과 안태비의 연관성 역시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되진 못했다.
김종헌 경기문화재연구원 학예사는 “보통 태실은 땅을 파고 항아리(태함)를 평평하게 안치해 흙을 다시 채우는 식으로 만든다. 땅을 팠을 때 생긴 흙을 1차 충진토, 다시 메울 때 생긴 흙을 2차 충진토로 표현한다면 세 번째 태실유구만 일부 충진토가 달랐다”며 “추측하건대 첫 번째, 두 번째 태실유구를 만들고 세 번째에서 2차 충진토가 모자라 주변 다른 흙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즉 3개의 태실이 비슷한 시기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태실유구가 2기 이상 조성된 사례(원주 숙정ㆍ숙휘 옹주 태실, 밀양 삼태리 성종왕녀 태실)를 보면 남녀를 한 봉우리에 만든 사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원당리 성종왕녀 태실 3기도 명확한 주인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고고학적 기록을 봤을 때 원당리 안태비가 1481년 7월21일~7월24일께 조성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태실이 안태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면 성종왕녀는 그보다 앞서 출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이번 태실은 1481년 7월 이전에 태어난 왕녀의 태실로 풀이된다.
지난해 태봉ㆍ태실 기초조사 결과 경기도내 태실은 31개소, 분묘병장은 2기, 태봉은 32개소가 확인됐다. 도와 문화재연구원은 오는 2028년까지 포천 성동리 익종태봉, 파주 축현리 태봉 등 다른 발굴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태실이 부실 관리로 다수 사라졌다.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태봉ㆍ태실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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