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바다에서 가장 물의 흐름이 빠르고 험한 곳이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이라고 부르는 명량해협(鳴梁海峽)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어느 때 조류가 빠르고, 어느 때 물길이 바뀌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거북선으로 왜선 133척을 맞아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것도 명량해협의 물길이 변하는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치에서도, 특히 선거에서 ‘때’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협의 조류, 그 바다의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해 승리한 것처럼 선거도 민심의 흐름, 그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회창의 대권실패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그의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권 반열에 올려놓았던 ‘대쪽’ 이미지와 ‘3金청산’이 족쇄가 됐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그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57만표라는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불과 2.3%p 차이, 그러니까 이회창 후보가 30만표만 더 얻었으면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이 얇은 벽을 그는 뚫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을까? 대통령선거에서 2.3%p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그가 JP(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JP를 잡았으면 충청권에서 적어도 30만표 이상은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투표 전에 이미 이와 같은 낌새를 느낀 참모들이 JP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건의를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그의 정치철학이었던 ‘3金청산’이라는 것이 제동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제동을 건 또 하나의 사유도 있다. JP가 이회창과 손잡으면 충청권의 정치적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K씨가 자리를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다 이회창은 투표 며칠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JP를 만나러 청구동 JP자택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JP자택에 거의 도착할 무렵, K씨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만약 JP를 만나면 자신은 탈당하겠다는 전화였다. 결국 이회창은 JP를 포기하고 차를 되돌렸다. 그리고 JP가 끌어 모을 수 있는 30만표는 노무현 후보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JP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처럼 JP와 이회창이 손을 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성사 직전 서로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일까? 아니면 참모들의 판단 착오일까?
이회창은 박근혜 의원(후에 대통령)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문제로도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박근혜를 영입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잃은 후였다. 2007년 12월, 그가 세 번이나 삼성동 박근혜 의원 집을 찾아갔으나 면담조차 거부당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회창은 대권도전에 실패하는 쓴잔을 마셨다. 역시 때(時)를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말이 수긍가는 대목이다.
어쩌면 지금 대권주자들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걸 주저하고 있는지 모른다. 후보자 본인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측근 참모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임박해서 손을 내밀면 그때는 이미 놓친 것이고 과거 이회창처럼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후보는 아니지만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안철수를 따돌림 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좋은 자세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승자와 패자 표차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포용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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