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그리스 미술과 포도주

고대 그리스 시대는 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미메시스’(mimesis)는 당시의 대표적인 예술론으로서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다. 미메시스는 우리말로 ‘모방’으로 번역되는데,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예술의 근본적인 행위가 자연의 모방’이라고 정의하면서 모방론을 정립했다.

모방론에 따르면 훌륭한 작품이란 자연을 잘 모방(재현)한 작품으로서, 재현의 현실성에 따라 작가의 수준을 구분했다. 이러한 모방론의 대표적인 일화가 ‘제욱시스’의 포도이다.

당시 그리스 최고 화가의 자리를 놓고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가 경합을 벌이게 됐다. 먼저 제욱시스가 마을 담벼락에 포도나무를 그렸는데, 정교한 그림 때문에 새들이 날아와 그림 주위를 맴돌았다. 기분이 좋아진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에게 당신의 그림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는 자신의 작업실로 제욱시스를 안내했다. 작업실에는 그림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제욱시스는 커튼을 걷으라고 했는데, 문제는 바로 커튼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제욱스시는 ‘나는 새들을 속였지만 파라시오스는 예술가를 속였다’는 말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제욱시스가 포도를 그린 것은 포도가 묘사하기 힘든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포도는 올리브와 함께 그리스인들에게서 사랑받는 물건들이었다. 특히 포도는 포도주로 만들어지면서 인류 최초의 술이 됐다. 비록 그리스에서 포도주가 발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인들을 통해 포도주가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포도주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디오니소스가 인간들에게 포도나무와 포도주를 전파한 것으로 서술하고, 디오니소스를 술의 신으로 예찬했다.

플라톤은 포도주를 “영혼을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육체의 건강과 힘을 주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고, 히포크라테스는 포도주를 가장 맛있는 약이라고 주장하면서 “적당량의 와인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물로 희석해 묽게 해서 마셨다.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직접 마시는 것은 건강에 해로운 일이며 야만의 종족이 행하는 일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술을 절제하기 힘든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신이기도 하다. 이성을 대표하는 아폴론이 낮의 신이라면 감성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는 밤의 신이며 쾌락의 신이다. 예술은 이성적인 사고보다 감성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저급한 것으로 예술가를 장인 중에서도 하급의 장인으로 취급했다. 플라톤은 영원불멸의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다. 우리 현실의 감각적인 사물 대신 눈으로 볼 수 없는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플라톤은 추구한 것이다. 세계를 둘러싼 모든 것은 부서지기 쉬운 허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허상을 모방하는 예술가들은 거짓 진리를 이야기하는 자들이로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프라톤은 역설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이데아를 비판한다. 관념에 머무는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이지만 거기에는 이데아의 흔적들이 숨어져 있으며 오로지 예술가들만이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은 단순히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야 진정한 모방이라고 ‘모방론’을 정의 내렸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술은 원본과 모방 사이의 긴장에서 태어난다. 예술은 원본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사된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린 아름다운 밤하늘은 과연 진정한 밤하늘인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보고자 한 밤하늘인가?

밤하늘의 모습은 그저 밤하늘이지만 우리가 감동해서 그려놓은 밤하늘은 우리의 마음도 아니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도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진리를 갈구하는 우리 영혼의 울부짓음이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미메시스이며 예술인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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