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오징어게임> 역시 지상의 삶을 반영하는 여러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지만 가장 부각되는 주제는 돈이다. 주인공 성기훈과 등장인물들의 궤적이 다채롭지만 그들의 오딧세이는 한마디로 돈으로 꿰인 파노라마. 사람이 돈 때문에 훼손되고 타락한다. 수모를 감내하면서도 분노하다가 결국 기속되고 급기야 목숨까지 걸며, 분열 배반하며 멈추지 못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돈에 목숨을 거는 사정은 이미 아이러니가 아니다. 무료한 돈 많은 악덕 군상들이 돈으로 사람을 게임으로 유인하고 본인의 결정에 책임을 전가하는 국면도 등장해 우리를 공분케 하지만 그 여운은 지속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것은 외재 요인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란 건가. 요컨대 관객들은 처음엔 작중 현실을 자신의 일상과 무관하게 보다가 차츰 그 비슷한 알레고리로 알아차리며 작중 현실과 인물들의 처지에 어느덧 별 이의를 갖지 않은 듯하다. 그리하여 관객들의 전율에 연민과 공포가 발생했다면, 그 연민은 미적 거리가 개재된 작중 인물에의 그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감상성(感傷性) 연민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치관 조사에서 물질 추구와 부유가 가치서열에서 1위였다. 경제 경영 분야의 도서가 올해 교보문고 단행본 판매에서 점유율 1위였는데, 1980년 교보문고 개점 이래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이 발표도 우리의 주목을 끌기는 했으나 사회 차원의 후속 음미와 우려는 활발하지 않았고, 기존 황금만능의 확대로도 보지 않았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와 더불어 젊은 세대가 근로소득으로는 집 구입과 재산 증식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라서 그 경향을 비판하기에는 난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소설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도 비극이나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기여하는 주요 모티프도 바로 돈이다. 대표작 <죄와 벌>도 바로 그 때문에 야기된 불행과 비극을 우선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죄와 벌>에서 한 미숙한 인간 라스콜니코프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다단한 내외 추이를 답사할 수 있다. 돈에서 비롯된 불편과 불만으로 시도한 자기기만, 전당포 노파 살해를 그렇게 합리화한 자신을 통렬하게 회오하는 나와 이웃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돈에 압도되지만 돈 자체에 그저 매몰되는 부류와 결국 삶 자체를 성찰하고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상황이 만 두 해나 계속되고 변종들로 해서 더욱 엄중해진 가운데 자영업자를 위시해 민생이 심각하게 곤란하다. 이러다가 <오징어게임>의 작중 현실이 그대로 작품 밖으로 뛰쳐나올지 모른다. 대선을 두 달 보름여 남겨둔 이 시점, 민생을 살릴 정책 경쟁은 희미하고 후보 가족의 문제가 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대체 무엇이 우선인가. 우리 모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의 한 대사,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를 다시 음미했으면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오징어게임>의 등장인물이기를 거부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협력하며 그 게임의 매트릭스를 공생의 정치로 해체할 수 있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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