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움의 손길도… 누군가에겐 희망의 꽃씨”
“오늘 제가 전한 소소한 나눔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꽃씨로 전달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성남 분당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최은희 오름수학 원장(51)은 2014년 경기도 5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지난 2019년 7월 약정된 1억원을 모두 완납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통장에 6만원씩 입금해 300만원을 채운 통장 34개 는 그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모임에 나가 화려한 명품백을 자랑하는 것보다 주변의 이웃을 도왔던 사례로 정 겹게 이야기꽃을 피울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최 원장을 만나 나눔의 가치와 행복의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Q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결심한 이유는.
A 가난했던 유년기를 극복한 저는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성남 분당에서 학생들을 명문대에 턱턱 입학시키는 나름 입소문 난 수학강사로 성공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압박붕대를 두르고 수업을 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우연히 신문에 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접하게 됐다. 그 순간 어려웠던 시절, 두 명의 은사님께 받았던 은혜를 언제가 남을 돕는 일로 갚고자 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이거다’ 무릎을 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마음속 오래 붙잡고만 있던 나눔을 실천한 뜻깊은 날이다.
Q 두 명의 은사님 이야기를 전해달라.
A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급격히 기울었다. 서울에 살던 가족 모두가 전북 부안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인 이덕주 선생님이 첫 번째 은사님이다. 부안에서 폐허나 다름없는 허름한 초가집에서 살다 보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욕도 의지도 없었다. 그때 이덕주 선생님께서 저를 잡아주셨다. ‘공부를 해야 무시당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 한번 해보자’ 이 같은 격려에 다시 힘을 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학업을 이어가게 됐다. 두 번째 은사님은 재수 시절 학원 강사로 만난 김윤문 선생님이다. 서울로 상경해 낮에는 공장 보조일 등 일을 하고, 밤에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는데 돈이 없다 보니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내가 먹는 게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을 때다. 그때 김윤문 선생님께서 단과 수업 수강증을 끊어주셨고 그 덕분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찾아뵙는데 정작 선생님께서는 기억을 못하시더라(웃음). 그때 더 절실히 깨달았다. ‘작은 선행 하나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될 수 있겠구나’.
Q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후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A 사실 기부를 결심했을 당시 학원 경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반대할 것으로 생각해 기부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이듬해인 2015년 남편이 학원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명패가 걸린 것을 보고 알게 됐다. 남편은 “당신이 결정한 일이니까 알아서 해”라고 담담히 말했다. 제 결정에 대한 힐난이 아닌 믿음의 표현이었다. 남편과 대학시절 사귀어 결혼까지 골인했는데 옳다고 믿으면, 그 길을 향해 소신껏 나아가는 제 신념을 알고 있기에 저의 판단을 믿었던 것 같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틸 정도로 알뜰하게 살았던 남편과 두 아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사실 기부라는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가족의 의사를 뒤로할 수는 없다. 남편과 아이들이 저의 결정을 믿고 지지해준 덕분에 무사히 완납할 수 있었다. 기부액 완납 후 가족에게 너무 고마워 에어컨을 선물로 들여놨다(웃음).
Q 학원 아이들이 자연스레 원장님의 나눔 철학을 배울 것 같은데.
A 아이들이 학습 목표를 달성해 얻는 성취감을 자연스레 나눔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학습 의욕이 부족한 당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하다, 방학 때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매일 함께 도서관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내가 도서관을 함께 가서 너를 도와줄게, 너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제안했는데, 아이가 동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약속으로 방학 때마다, 아이와 도서관을 찾았고 그렇게 함께 도서관을 간 날이면 아이는 하루 1천원씩 기부를 했다. 그 약속이 아이가 고3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된 것은 물론 인성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랐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기부금을 받는 형태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에 기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기부 문화를 접한 아이들이 나눔을 통해 행복이 곱하기, 무한대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거로 생각한다.
Q 코로나19로 기부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데.
A 코로나19 여파로 나눔 문화 역시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기부는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가령 1년에 100만원을 기부하던 사람이 코로나로 어려워진 경제 사정에도 똑같이 100만원을 하려니까 부담을 느낀다. 상황이 어려우면 10분의 1로 줄여도 된다. 제가 가난으로 힘들었던 당시 누군가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에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위안을 받았기에 잘 안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은 따뜻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자신이 베푼 선행을 주변에 적극 알리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저 같은 경우 모임 자리에 나가면 명품백을 자랑하는 것보다, 우리 주변의 힘든 이웃을 도왔다는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 더 즐겁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작은 손길이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꼭 실행하셨으면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인 정성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큰 사랑으로 건네져 우리 사회에 더욱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 거다.
이광희 기자 / 사진=윤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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