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2021 미술계 화두, 이건희 미술관

2021년이 이제 딱 하루하고도 반이 남았다. 올해 가장 큰 미술계 화두를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이건희 컬렉션’을 뽑겠다. 삼성家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세를 대신해, 미술품 2만3천여점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사실을 올해 4월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부회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국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주문했는데, 이후 ‘이건희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공개된 기증품의 리스트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국보 수준의 한국 고미술품부터 폴 고갱,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까지 정말 대단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겸재 선생의 ‘인왕제색도’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뛰게 만들었다. 현재 이 기증품의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코로나19 여파로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 가능하다. 이건희 컬렉션이기 때문인지, 수준 높은 작품 때문인지,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이건희 미술관’은 2021년 최고의 미술계 큰 사건이다. 하지만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이 기증작은 국가의 세금을 미술작품으로 대신 낸 것이다. 사회공헌의 의미보다는 사회 공동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이건희 컬렉션’, ‘이건희 미술관’으로 불러야 할까? 메세나(기업의 공익활동)라면야,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메세나로 보기는 어렵다. 컬렉션에 대기업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은 아닌지, 미술계의 고민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다. 처음에는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집 앞에서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그런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시 국립현대미술관 옆 송현동에 건립을 결정하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일까?

필자가 있는 평택시는 미술관도 박물관도 없는 곳이다. 평범한 사람은 일년에 한 번 미술관을 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예술에 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방 사람과 서울 사람의 차이가 정해진다. 지방에 있어보니, 서울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도 어려운 것이 많다. 이번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양질의 작품, 국가의 관심과 정책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잘 갖춰진 사업이었다. 아마 2021년 이후 이렇게 수준 높은 대량의 작품이 공공에게 돌아갈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은 매우 아쉽다.

공공의 이익이 서울에서만 실현되는 것일까. 예술의 향유가 소수의 특정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이제는 정책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징적으로라도 ‘이건희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2022년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분들, 새해에는 기쁜 일만 있으시길! Happy New Year!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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