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2, 盧-鄭 단일화 백미는 ‘막판 택일’/2022, 尹-安 단일화도 여유로움이 관건

많은 이들이 하나의 추억을 말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판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다. 막판에 모든 걸 뒤집었던 역전 역사의 백미다. 집권 여당 민주당 후보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경선 당시 노 후보 지지는 상종가였다. 노사모로 대변되는 국민적 결집이 놀라웠다. 후보가 되면서 거품이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결국엔 제3지대 정 후보에도 밀렸다. 그해 10월 말 현재 여론조사가 있다. 이회창 35% 이상, 정몽준 25% 전후, 노무현 10% 후반이었다.

11월5일 양측의 협상이 시작됐다. 노무현 후보가 모든 걸 버렸다. 거대 정당의 자존심을 버렸다. 경선 방식도 본인에 유리한 방식을 포기했다. 정몽준 후보가 유리하다고 알려진 여론조사 단일화를 수용했다. 이제 노무현 정치 역사로 기록된 전략이었다. 판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조짐은 협상 시작과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협상 시작 5일 후인 11월10일, 한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이 후보 36%, 정몽준 21%, 노무현 21%였다.

11월15일께, 또 다른 여론조사가 나왔다. 이 후보 40%, 노 후보 23%, 정 후보 21%였다. 분석은 많았다. ‘승부수가 먹혔다’고도 했다. ‘약자의 양보가 어필했다’고도 했다. ‘정통 야당의 힘이다’고도 했다. 다 호사가들이 내놓는 말장난 후평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세를 결과로 끌고 갔다는 점이다. 후보단일화 결정일인 11월25일, 노 후보가 이겼다. 그해 대선일은 12월19일, 마지막에도 노 후보가 이겼다. 역전 드라마였다.

그 2년여 뒤, 청와대 오찬이 있었다. 참석자는 경기ㆍ인천 지역 언론 편집ㆍ보도국장단이었다. 식사 첫술을 뜨며 노 대통령이 뜻밖에 술회를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선거 때는 보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후보 단일화도 너무 빨랐으면 효과가 사라졌을 거예요. 막판까지 참고 가는 데 참 힘들더라고요.” 후보 단일화를 최대한 선거일에 가깝게 미룬 전략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해 단일화에는 어떤 평가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2022년 대선판이 그때의 복사판이다. 잘 나가던 제1야당 윤석열 후보 지지가 급락했다. 제3지대 안철수 후보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선거일이 많이 남지 않았다. 후보 단일화가 그때만큼 절박한 화두로 떠올랐다. 중언부언이 필요 없다. 최고 교보재는 2002년 후보단일화다. 그 중에도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꼽은 백미는 최대한 늦춰 잡은 택일이다. 어떤 평가를 받을 시간도 주지 않는 ‘막판 택일’이 대역전의 묘수였다.

올 대선일은 3월9일이다. 그 기준이면 2월 전반부다. 그 역사를 재연할 수 있을까. 여기엔 추격 당하는 쪽, 추격하는 쪽 모두의 내려놓음과 여유로움이 필요한데 이게 가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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