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검은 호랑이 해 설날

임인(壬寅).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福)을 가져다주는 ‘검은 호랑이 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지도 않고 모든 어려움 속에 국민이 고통 받는 상황에서 ‘검은호랑이’의 기운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얼마 안 있으면 설날이다. 일제가 양력을 앞세워 구정(舊正)이라 폄하해,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계승해온 설날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1985년 음력 1월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국가 공휴일이 되고, 1989년부터는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해를 맞아 첫 번째 명절인 설날에 즈음해 건강과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설날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가족이 모여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지만, 예전만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예로부터 설에는 차례와 성묘를 지내고 친지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아름다운 고유의 풍속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설날을 맞아 조상의 공덕을 기리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차례를 지낸다. 가장 좋은 음식을 차려 차(茶)나 술을 올리고 선조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록 코로나19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설날을 보내는 것이 어렵게 됐지만,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정성껏 차례를 지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설날 즈음에 산사(山寺) 마다 거행하는 ‘설날합동차례’에 가족과 함께 참여해 조상을 추념(追念)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조상을 기리는 것은 효도(孝道)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전통을 소홀히 여기는 세태(世態)가 됐지만, 어버이를 공경하는 효도는 인류의 기본 덕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릿고개를 겪는 어려운 시절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자손으로서 당연히 3년간 시묘(侍墓)살이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큰 숙부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49재와 100재를 절에 가서 지낸 뒤에 탈상(脫喪)을 하거나, 아니면 대청마루에 상청을 차려놓고 3년간 끼니마다 상식(上食)을 올리는 것을 봤다. 어린 마음에 “돌아가신 분이 드시지도 못하는 음식을 왜 올리나”라고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뜻을 알았다.

부모님과 선조의 은혜는 태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는 말씀이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양 어깨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고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미산(須彌山)을 한 없이 돌고 돌아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님의 은혜가 지중하며 효도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이번 설날은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부모님 없이 지금의 우리가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진리는 바뀌지 않은 거와 같이 우리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자손이 됐으면 한다. 그리하여 임인년 검은호랑이 해가 모든 벽사(辟邪))를 물리치고 희망의 등불을 밝힐 수 있기를 염원하며,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한다.

오봉도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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