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전국 최다 배출…경기, 녹색미래 선도하자 국내 산업·인구 밀집…"선제적 탄소중립 실행해야"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마치 인간이 감염성 질환에 걸렸을 때 병원균을 이겨내고자 신체에서 열을 내는 면역 활동에 나서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지구의 발열은 ‘회복’이 아니라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물의 순환 구조 변화, 생태계 다양성 훼손 등을 야기하고 있어서다. 이에 본보는 지구온난화 예방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온 ‘탄소중립’ 실현과 관련, 국내에서 인구와 산업이 최대로 밀집돼 있는 경기도가 준비해야 할 사안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과 관련, 국내의 인구 및 산업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경기도가 탄소중립을 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도내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억3천만tCO2eq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국내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17.9%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국 최다 규모다.
도는 전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최근 14년 동안(2005~2018년)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평균 3.2%씩 증가, 전국 평균(2.0%)보다 1.6배 빠르게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있다. 특히 이 기간 단 한 차례(2014년·4.0% 감소)를 제외하고, 매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해왔다.
지난 2018년 기준 도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야별로 보면 ‘산업’이 4천940만tCO2eq(38.0%)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규모 반도체 공정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소기업과 제조공장 등이 밀집돼 있는 산업단지 역시 다수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수송·도로’ 분야가 2천530만tCO2eq(19.5%)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이며 뒤를 이었다. 경기지역은 국내 경제의 중심지인 서울, 물류와 항만 등이 발달한 인천 등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이에 지역 내 차량 운행이 많아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가정’ 분야에서 2천410만tCO2eq(18.5%), ‘상업·공공’ 분야에서 2천300만tCO2eq(17.7%) 등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이런 가운데 도는 세종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구와 산업 등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해 기준 도내 인구는 1천353만여명(전국의 26.2%)으로, 최근 16년간 연평균 1.5% 수준의 인구증가가 이뤄졌다. 이는 전국 평균 인구증가율(0.4%)보다 약 4배 높은 수치다. 또 지난해 기준 도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600만4천여대로, 전체의 24.6%에 달한다. 자동차 등록대수 2위 지역인 서울(315만7천여대)과 비교해도 1.9배 이상 많은 셈이다.
이 같은 특징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도내 온실가스 배출량 급증은 불 보듯 뻔한 실정이다. 이에 도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타 지역보다 앞서 탄소중립 준비에 돌입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장동빈 기후위기경기비상행동 공동실행위원장은 “탄소중립은 우리 삶의 터전을 기후위기로부터 지켜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라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가능한 탄소중립 방안을 적극 찾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 '탈(脫)탄소' 중심 재편…국내 산업도 변해야 산다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세계 경제 역시 ‘탈(脫)탄소’를 중점으로 고려하는 구조로 재편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과 EU 등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탄소중립 관련 규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의 산업도 무역경쟁력 유지를 위해 탄소중립 분야 투자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탄소중립 규제 도입 시 자동차·선박·철강 등 직격탄
고재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공동연구한 ‘경기도 탄소중립 추진전략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미국과 EU 등을 중심으로 자동차 배출규제 상향과 플라스틱세 신설 등 내용을 담은 ‘탄소국경세’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함과 동시에 자국의 제조산업 등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새로운 무역 장벽 마련에 나서고 있다.
EU의 경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수입되는 시멘트·비료·전기·철강·알루미늄 등 5개 품목에 탄소배출량 규모별로 정해진 ‘배출권’을 의무적으로 구매토록 하는 구체적 도입안을 발표했다. EU는 우선 내년부터 3년 동안 수입품의 탄소배출량만 보고를 받지만, 오는 2026년부터는 정식으로 수출국가에 배출권 부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EU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면 연간 약 32억달러, 미국이 도입할 경우 약 39억달러 규모의 수출 감소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업종별로 보면 탄소집약도가 높고 수출 비중이 큰 특징을 갖는 ‘운송장비(자동차·선박)’, ‘금속제품(철강)’, ‘화학제품(합성수지·의약품)’ 등이 수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분석됐다.
■ 무역경쟁력 약화는 곧 지역경제 침체로 연결
탄소중립 규제를 앞장서 주도하고 있는 EU의 경우 과거부터 지속가능한 성장을 준비해온 탓에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모습을 자국에 유리하게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024년부터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탄소발자국(개인 또는 기관이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 총량을 추적하는 지표) 공개를 의무화하고, 2027년부터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상한선까지 마련해 제시할 계획이다.
이는 전기자동차 관련 후발주자인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산업 무역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및 EU와 아시아 국가 간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차이는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에 대해 EU의 국가가 비슷한 공정과 기술로 같은 제품을 제조한다고 가정하면, 제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규모에 따른 규제가 국내 제품에만 적용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이 같은 요인들로 인해 무역경쟁력이 약화돼 수출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이는 곧바로 지역경제 침체로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의 ‘지역별 공장등록현황’을 보면 지난해 기준 전국의 20만여개 공장 중 35.5%(7만1천여개)가량이 도내에 집중돼 있다.
이에 기존의 산업 구조인 ‘자원채취-생산-사용-폐기’에서 탈피해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및 순환경제로의 전환 도모 등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고재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규제가 도입되는 것은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존의 산업 구조를 탄소중립 가치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선제적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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