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칼럼]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달 ‘내가 지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정치보복을 할 수 있다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한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도 ‘대장동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인 발언이라는 평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후보는 그 다음 날도 ‘대한민국을 미래로 가는 희망찬 나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복수혈전이 펼쳐지는 과거로 갈 것이냐’라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복수혈전’이니 ‘감옥’이니 하는 말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듣기에도 거북한 말이다.

그런데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통령까지 나서 분노를 표시하는 등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하질 않다.

우리 조선 당쟁사가 ‘복수혈전’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갑자사화가 대표적 케이스. 1478년 봄 전국에 흙비가 내려 성종 임금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고 어전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사치를 금하고 술을 마시지 않게 하자고 아뢰었으나 비서실장격인 도승지 임사홍만 술을 금하자는 것에 반대했다. 흙비는 재해일 뿐이며 제사가 많은 궁궐에서 어떻게 술을 금하느냐는 것이었다. 급기야 임사홍은 그의 돌출발언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을 간 임사홍은 그날부터 ‘복수혈전’의 칼을 갈았다.

귀양살이에서 복귀한 임사홍은 아들 둘을 임금의 사위로 삼는데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성종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연산군이 등극하자 임사홍은 연산군과 밀착해 권력의 날개를 달았다. 연산군의 최측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은 임사홍은 자신을 귀양 보냈던 정적들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결행한다.

1504년에 벌어진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연산군의 생모가 참소 당해 죽은 사실을 연산군에게 고해바침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보복이 일어난 것.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 죽음에 관련된 선비들을 모두 죽이고 이미 죽은 사람은 그 무덤까지 파헤쳐 유골에 칼질을 하는 등 공포분위기가 계속됐다. 임사홍은 연산군을 부추겨 과거 ‘흙비’사건으로 자신을 귀양 보냈던 반대파들 역시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등 철저한 보복을 감행했다.

그렇게 권력은 가슴에 맺혔던 ‘흙비’의 한도 깨끗이 풀어 주었다. 그야말로 권력의 맛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정의와 공정을 상실했을 때는 여지없이 뒤집어 엎는 속성이 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의 폭정이 종말을 고하자 임사홍 역시 자신이 정적에게 했던 것처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욕 보였다. 이와 같은 보복의 정치가 갑자사회에 끝나지 않고 조선왕조가 망할 때 까지 계속된 것이 부끄럽게도 우리 역사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선판국이 심상치가 않다. 불나비들이 죽는 줄 모르고 불을 향해 돌진하듯, 선거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다. 치졸한 술수가 다 동원되고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진흙탕 싸움을 한다.

마치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다. 그리고 마침내 ‘지면 감옥 갈 것’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결국 이와 같은 현상은 선거 자체를 혐오스럽게 하고 있다.

이렇게 추하게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인 끝에 승패가 결정나면 어느 쪽이든 흔쾌히 승복할 것인가? 그 앙금이 보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며칠 전 하루 동안에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MBC를 대검에 고발하는 등 3건의 고소 고발이 있었고, 민주당도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제보자 죽음이 이 후보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데 대해 허위사실유포로 서울지검에 고발하는 등 고발 고소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선거후의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된 이번 대통령선거 보도관련 이의신청 또한 1월말 현재 64건이나 되고 있음도 선거후 분위기를 걱정하게 한다.

정말 선거가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축제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허망한 일일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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