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람직한 워딩은 이거다. ‘수사와 정치 일정은 무관하다’ ‘대선 상관 없이 수사는 진행된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선판이다. 국민 여론도 극명하게 쪼개져 있다. 수사로 가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예민하다. 언제든지 선거 중립 위반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대선 후보와 연결된 그런 사건들이 경기남부경찰청에 많다. 이런 때 최승렬 경기남부경찰청장의 말이 전해졌다.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얘기다. “경찰이 선거에 영향을 준다거나 수사의 중립성을 오해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겠다... 어느 후보라도 선거 이후 좀 더 많은 수사력이 집중되지 않을까 한다.” 본격적인 수사는 대선 이후에 한다는 설명이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선택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를 공언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선거 때까지 안 한다는 것이고, 끝나면 수사력을 집중할 것이라는 얘기다.
3월 9일 대통령을 뽑는다. 그날 누구는 대통령 당선인이 된다. 또 다른 누구는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야인이 된다. 지금 추세라면 이재명·윤석열의 얘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들 또는 그들 가족의 사건들이다. 이 상황에서 수사가 공정할 수 있을까. 공정하다고 여겨 줄까. 공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정하다고 안 봐줄 것이다. 그래서 최 청장의 이날 발언은 굳이 틀리지는 않았으나 적절치도 못한 얘기가 된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2002년 대선 이후 수사가 있었다. 대선 자금에 대한 수사였다. 패배자 이회창 측은 ‘차떼기’로 터졌다. 승자 노무현 쪽 범죄 액수가 훨씬 적었다. 공평한 수사는 아니었다. 2007년, 이명박 수사도 그랬다. 당선인 신분으로 다스 사건 등을 수사 받았다. 그때는 공정한 수사라고 했다. 먼 훗날 이 전 대통령은 그걸로 구속됐다. 이 외에도 대선 이후 수사의 역사는 많다. 공정했다고 인정받은 수사가 없다.
간담회란 게 그렇다.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자리다. 기자들이 이것 저것 묻기도 한다. 어찌 보면 솔직하고 진솔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걸 다 감안해도 적절하지 않았다. ‘수사는 대선과 무관하게 해나가겠다’고 했더라면 좋을 걸 그랬다. 그래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지 않나. 대선 끝나면 곧 지방 선거다. 정치인 수천 명이 뛴다. 모두 사생결단한다. 그 살벌한 선거판에선 자유로울 수 있나. 그렇다고 또 미룰 건가.
수사는 늘 묵묵히 가야 한다. 그리고 묵묵히 간다고 늘 말해야 한다. ‘선거 때까지 안 하겠다’ 혹은 ‘선거 뒤에 제대로 하겠다’... 해선 안 될 얘기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