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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6-③
문화 찬란한 고대 문명이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6-③

1521년 틀라텔롤코 전투에서 승리한 코르테스는 아스테카 제국의 흔적을 없애려고 신전과 부속 건물을 파괴했다. 그 후 멘도사 안토니오 총독과 후안 주마라가 주교는 신전을 부순 돌로 1535년 산티아고 성당(Santiago de Tlatelolco)과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신전 부지 위에 세웠고, 지금도 이 성당은 파란만장한 멕시코 역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1536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식 교육기관인 산타크루즈 대학(Colegio de Santa Cruz de Tlatelolco)도 이 돌로 지었다. 대학 설립 초기에는 나우아어와 베라크루스–타바스코 지방의 마야어 통역과 번역 중심으로 교육했다. 하지만 누에바 에스파냐 건설의 신앙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교세 확장과 교회가 늘어 본국에서 사제 충원이 어렵게 되자, 크리오요(Criollo)와 원주민 귀족 아들을 선발해 사제와 수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 교육도 했다.

특히 원주민 선교를 위한 사제 양성은 아스텍 지배 계급 중 가장 권위 있는 가문의 남자아이들을 선발해 나우아어· 마야어·스페인어· 라틴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쳤고, 음악· 수사학· 논리학· 철학· 토착 의학 등을 라틴어로 교육했다.

틀라텔롤코는 테노치티틀란보다 13년 늦은 1338년에 세웠다. 이곳에도 테노치티틀란의 마요르 신전과 유사한 형태의 피라미드와 궁전이 있었으나 파괴됐고,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의 흔적에서 화려했던 그때를 상상케 한다.

멕시코 고고학자들은 틀라텔롤코 지역에 남아 있는 피라미드와 궁전 단지를 2009년 발굴 조사했다. 신전의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과 벽 외에도 인신공희로 희생된 사람의 목을 얹어 놓은 ‘해골 기단’인 촘판틀리(Tzompantli)에서 두개골 형상의 부조를 발굴했다. 그 외에도 아스텍의 달력과 우주관을 새겨놓은 태양의 돌(Aztec Sun Stone) 부조를 포함해 다양한 유물과 함께 49구의 유골이 안치된 대규모 무덤도 발굴했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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