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독립운동의 달을 맞이하여

3월은 독립운동의 달이다. 일제가 강탈한 나라를 되찾고자 떨치고 일어난 3·1운동 103주년을 맞이하며, 독립투쟁에 나섰던 지사들의 애국정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때이다. 비록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분들의 치열한 투쟁과 헌신으로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고, 한국전쟁과 산업화의 격동기를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었다.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손꼽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을 선열들이 놓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 시작된 독립만세 운동은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 한반도 전역에서 애국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서울 주변에 자리한 경기도에서도 수원 북문을 시작으로 개성, 시흥, 양평, 안성, 용인, 포천, 양주 등 전국의 21개 지역에서 225차례의 만세운동 시위가 일어났다.

남녀노소, 누구든지 한마음으로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흔연히 나선 3·1운동에는 시민과 함께 불교계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스님들은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식민지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고통받는 나라와 중생을 구하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산문(山門)을 나와 거리에서 ‘대한 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법주사 등 전국 주요사찰의 스님들은 마을주민과 협심하여 3·1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히 맞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대찰(大刹)로 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도 이러한 흐름에 부응해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3·1운동 소식을 전해 들은 봉선사 스님들은 주민들에게 “광릉천 강가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통문(通文)을 돌리며 거사를 준비했다. 봉선사에서 비밀리에 조직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임시사무소에 지월스님(이순재), 운암스님(김성숙), 강완수, 현일성, 김석로 등 애국지사들이 같이했다. 이 가운데 운암스님은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애국지사이다. 1919년 3월 31일 봉선사 스님들과 주민 등 600여 명이 광릉천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해, 이에 놀란 일본 무장경찰이 출동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고 주동자 8명을 체포했다. 1919년 10월 29일 봉선사에서는 200여 명의 스님을 비롯해 2천여명이 모여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제사’를 지냈다. 뒤늦게 정보를 입수한 일제는 양주경찰서에서 7명, 경기도경에서 10명의 무장 병력을 출동시켰다. 이태왕은 고종황제이며,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은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봉선사스님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봉선사에서는 운허스님과 동암스님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분들이 여럿이 있다. 운허스님은 3·1운동 직후 독립군 정기관지 한족신보(韓族新報)와 독립투쟁단체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해 일제에 항거했으며, 1962년에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봉선사에서 월초(月初)스님의 손상자로 출가한 동암스님은 3·1운동 민족대표인 백용성스님의 법맥(法脈)을 잇고,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 등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해방 직후에는 상해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환국봉영회(還國奉迎會)회장을 맡기도 했다. 1945년 12월 12일 서울 대각사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 행사에서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동암스님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 몇 년 전 공개됐다.

세속의 인연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 출가수행자이지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외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조직해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한 수많은 스님, 그리고 일제강점기 식민지를 극복하고자 분연히 나선 스님들의 애국혼(愛國魂)을 잊지 말아야 한다.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은 “선대 스님들과 지사(志士)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중생의 자비(慈悲)로 대하는 부처님 가르침과 같은 것”이라면서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후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없다. 선대의 호국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사명이며 의무이다. 3월을 맞이하여 불교계뿐 아니라 우리 민족 구성원 그분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후손들은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여 자손만대에 이어가길 기원한다.

오봉도일 스님 25교구 봉선사 부주지·양주 석굴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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