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이하 줄임)”
그제는 제 103주년 3·1절 기념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3·1절 기념일이 되면 이렇게 시작하는 ‘독립선언서’를 들을 수 있다.
이 선언서는 육당 최남선이 바탕글을 쓰고, 한용운·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을 해서 발표한 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들을 때마다 “도대체 이 글은 누가 누구를 향해 선언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우리 민족이, 그를 대표한 33인이 일본 제국주의와 전 세계인들을 향해 선언한 것이라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한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그 시절에 “오등은 자에 아…” 하는 이 글을 바로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우리끼리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어떻게 민족을 대표하는 선언문이 될 수 있나. 이 글은 애초에 이런 식으로 썼어야 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는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밝히고, 우리 자손들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렇게 일반 사람들이 평소에 쓰는 단어와 말투로 썼다면 누구든 쉽게 알았을 것이고,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뜻을 대변하는 선언문이 됐을 것이다. 민족 대표 33인은 식민지 조국을 독립시키겠다는 강렬한 뜻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뜻을 이루려면 먼저 말과 글이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벼이 여겼던 것 같다.
문제는 한글이 생긴 뒤로도 기득권층이나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쓰는 말과 글이 일반 백성의 그것과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이 같은 말과 글의 2중 구조는 사회 구성원들이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지 못하게 했고, 지식과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막아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다.
알아듣기 어렵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외국어나 한자어, 이상한 줄임말 등으로 가득한 요즘 우리 말과 글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한국 사람의 말과 글을 같은 한국 사람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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