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탄생 90주년, 전시장서 만나는 텍스트 악보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展 개최

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ca. 1961) 부분, 피터 벤젤 소장 이미지
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ca. 1961) 부분, 피터 벤젤 소장 이미지

# 셈여림표 ‘매우 여리게(피아니시모/pp)’의 첫 번째 방: 흐르는 물과 시끄럽게 울리는 낡은 괘종시계, 15개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테이프 녹음기가 있다. 이질적인 소리들이 3분마다 3초가량 들려온다.

# ‘매우 강하게 지하실(포리티시모 셀라/fff)’의 두 번째 방: 스코어에는 관객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금속 플랫폼이 있으며, 알비스 필터와 정현파 생성기, 직사각형파 생성기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누구나 뛸 수 있고, 싸울 수도 있다.

송선혁, 8개 방에 대한 사운드 디자인, 2022, 오픈릴 테이프, 테이프 녹음기, 자체 제작 스피커 등
송선혁, 8개 방에 대한 사운드 디자인, 2022, 오픈릴 테이프, 테이프 녹음기, 자체 제작 스피커 등

세계적인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은 1961년 위와 같이 텍스트 악보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작곡했다. 오선지 위 음계·음표가 아닌, 방이라는 공간 속 지시문·장치를 통해 악장을 넘기듯 방을 활보하게 하는 악보를 만든 것이다.

이 곡은 백 작가의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연주된 적 없었지만, 그의 탄생 90주년을 맞은 전시화 돼 관객을 찾게 됐다. 텍스트악보가 시각적으로 연주되는 건 이번이 국내 최초다.

완벽한 최후의 1초 The Last Consummate Second
완벽한 최후의 1초 The Last Consummate Second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오는 6월19일까지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을 개최한다.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은 제목과 달리 빈방을 포함해 총 16개의 방·16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는 아무런 지시가 없는 방(13번)도 존재한다.

왜 그럴까.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누리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은 20개의 방이 물리적으로 구획된 공간이 아니라 20개의 상황을 표현한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각 방은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상황과 소리를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빈 방(13번)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각 방마다 ‘물리적으로는 없지만 증식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 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완벽한 1초 역시 물리적으로는 없을 수 있지만 ‘최후의 1초’를 찾는 열쇠는 우리의 경험과 상황 속에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다움, 〈리미널〉, 2022, 8채널 영상, 사운드, 반복재생 _형광등, 가변설치
김다움, 〈리미널〉, 2022, 8채널 영상, 사운드, 반복재생 _형광등, 가변설치

그러한 백남준의 의도가 전시장에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번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에는 시각예술가,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한 만큼 다채로운 형식의 작업을 펼쳐보였다. 전시장에 설치된 방마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 후각, 촉각을 자극하는 장치와 사물이 관객의 행동을 유도한다.

지나치게 밝은 조명이 설치된 방, 쿵쿵 뛰며 진동을 느껴볼 수 있는 방 등을 오가며 관객들이 한 명의 연주자가 돼 참여작가들과 곡을 완성해가는 식이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위해 센터가 정성껏 준비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 시작을 알리는 전시”라며 “많이 연구한 만큼, 많이 공 들였다. 관객들도 즐거운 발견을 통해 백남준의 소탈함과 인간적인 모습 등을 마주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해주, 〈자연 조각들의 연주〉, 2022, 의자, 윈드차임, 도자, 돌, 나무 조각, 가변설치
문해주, 〈자연 조각들의 연주〉, 2022, 의자, 윈드차임, 도자, 돌, 나무 조각, 가변설치

이연우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