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또 블랙리스트 논란

‘블랙리스트(Blacklist)’는 ‘요주의 인물 명단’을 뜻한다. 정부나 수사기관 등에서 위험인물의 동태 파악을 위해 작성한 ‘감시 대상 명단’이다. 블랙리스트라는 말은 영국에서 처음 사용됐다. 찰스 1세가 청교도혁명으로 인해 사형당한 뒤, 아들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자 찰스 1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작성한 것이 시초다. 이들 명단을 적은 종이에 죽음을 뜻하는 검은색 커버를 씌웠다고 해서 ‘블랙리스트’라고 불렸다. 명단에 있던 사람 가운데 13명은 처형당했고 25명은 종신형에 처하는 등 복수가 이뤄졌다.

이 같은 살생부에서 시작된 블랙리스트는 보복이나 제거, 감시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됐다. 19세기 미국에선 파업 노동자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을, 1947년 할리우드에선 영화계 종사자 중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감독·작가·배우의 명단을 지칭할 때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블랙리스트와 반대 개념으로 ‘화이트리스트(Whitelist)’가 있다. ‘살려야 하거나 배려 또는 지원이 필요한 인물’을 말하는 것으로, 독일 나치 시절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쉰들러 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의 살생부, 현대사회 들어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일부 학계나 언론계, 문화계에서의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조용한가 싶더니, 블랙리스트 뉴스가 또 오르내린다. 정권 이양기인 요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초기 부처 산하 기관장 또는 공기업 대표 등을 상대로 사퇴를 종용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탈원전 정책과 코드가 맞지않는 산하기관장을 부당하게 내보낸 의혹과 관련해 최근 산업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통일부와 교육부 산하 기관장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이뤄졌다. 검찰이 3년간 묵혔던 사건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권력 앞에서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는게 검찰 속성이라고 한다. 블랙리스트 의혹을 철저히 밝혀내야 하겠지만 뭔가 씁쓸한 면이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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