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6년간 우리와 일본의 물가상승 추이를 비교해보니 우리의 물가가 너무 올라 물가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5천달러에 달해 일본의 4만달러에 육박해 우리가 놀랄만큼 성장해왔다. 즉 1975년에 우리의 1인당 GDP는 646달러였는데 일본은 4천600달러여서 일본이 우리의 7배에 달했는데 현재는 거의 비슷한 수준에 달했으니 우리의 성장이 월등했음을 볼 수 있어 우쭐한만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재 1인당 GDP는 1975년에 비해 54배가 늘었는데 일본의 1인당 GDP는 8.8배만큼만 늘었다. 이런 수치만 보면 우리의 국민후생이 엄청나게 향상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양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추이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이 기간중 우리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10.8배인데 일본의 그것은 1.8배에 그쳤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물가는 우리에 비해 극도로 안정됐다는 점이다. 거의 반세기동안에 일본의 물가는 배도 안되는 수준으로 올랐다니 상상이 안될 정도다. 필자는 1975년에 일본에 체재했는데 점심 한끼를 450엔 정도로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일본에 가서 점심 한끼를 1천엔 정도로 해결할 수가 있어 놀라웠다. 또 놀란 것은 1975년에 통용되던 1엔, 2엔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으니 물가가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물가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올라 경제가 크게 성장했으나 국민들의 후생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1970년에 비해 현재의 주요 물가를 비교해보면 시내버스 요금은 120배(10원에서 1천200원), 자장면은 50배(100원에서 5천원), 쌀은 33배(40㎏ 2천880원에서 9만6천200원) 올랐다. 최근에는 10원짜리가 아예 쓸모가 없이 사라졌고 100원짜리도 거의 쓸데가 없어졌으며 최근의 물가상승 추세로 보아 500원짜리도 곧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즉 물가가 너무 올라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졌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물가가 어떻게 그렇게 안정될 수 있었는가? 첫째는 환율의 지속적인 절상이 한몫을 했다. 일본은 지속적인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입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계속 누적되자 미국이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일본엔화의 절상을 요구한 것이 수입물가 안정을 통한 국내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즉 일본엔화의 대미달러 추이를 보면 과거 1달러에 360엔 하던 대미환율이 현재 1달러에 118엔을 기록하고 있어 일본의 수입물가 안정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국내자원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엔화의 지속적인 절상은 일본국내의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둘째 일본의 노사관계의 안정이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본은 노사관계가 매우 안정되어 있어 매년 임금인상이 극히 낮은 수준에서 결정돼 임금이 물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물가안정 요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1973년에 1달러에 397원하던 것이 현재 1천240원으로 거의 3배가 절하됐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환율의 절하가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노조의 지속적이고도 과격한 임금인상 투쟁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하고 여기에 정부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더해져 물가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고도성장을 추구해오는 과정에서 수요초과 인플레 현상이 빚어진 것도 한 원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소득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했으나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비자물가는 너무 올라 우리 국민의 후생이 일본에 비해 소득이 는 만큼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최근의 소비자물가는 4% 상승에 달해 물가상승이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후생증진을 위해 물가안정 정책에 보다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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